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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시도, 예상 밖 결과 … 논란의 판도라 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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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대법원 판결에 따라 23일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김모(77·여)씨가 당초 3시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스스로 호흡을 유지하며 목숨을 이어가자 관련된 사람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존엄사(尊嚴死) 시도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어서다. 김씨의 주치의인 세브란스병원 박무석(호흡기내과) 교수, 대법원 오석준 공보관, 김씨 가족 측 변호인 신현호 변호사를 긴급 인터뷰했다.



김 할머니 가족 측 신현호 변호사
“병원의 오진, 과잉진료 드러난 것”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는데 환자 스스로 호흡하고 있다. 가족들이 무리하게 치료를 중단하려 한 게 아닌가.

“정반대다. 가족들은 호흡기를 뗀 직후 김 할머니의 상태가 호전되자 존엄사를 선택하기를 잘했다고 말했다. 환자를 포기하려고 호흡기 제거를 요청한 게 아니라 호흡기를 뗀 상태에서 치료를 받겠다는 거였다. 호흡기를 떼자마자 돌아가셨다면 가족들의 심적 부담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김 할머니의 얼굴이 편안해지면서 가족들이 안정을 되찾았다. 살짝 코를 고는 김 할머니를 보고 큰사위가 ‘우리 어머니 낮잠 주무시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호흡기를 뗀 뒤 부검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호흡기를 떼자마자 환자가 숨질 것으로 봤다는 뜻 아닌가.

“가족들은 부검 반대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검사가 영장을 발부받아 부검을 하겠다고 한다. 가족들로서는 도리가 없다. 가족들은 사망과 연명 모두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한순간도 환자의 치료를 포기한 적이 없다. 호흡기만 떼 달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오히려 세브란스병원 측이 환자를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다. 가족들은 일반 병실에서 호흡기를 떼 달라고 요구했다. ”

-병원 측은 환자가 더 살 수 있는데도 대법원 판결 때문에 연명치료를 중단했다고 유감을 표했는데.

“호흡기를 진작 뗐으면 환자가 더 편하게 더 오래 살 것이다. 호흡기를 다느라 중환자실에 들어가면서 가족들과 격리됐고 입술이 다 부르텄다. 결국 병원 측이 과잉 진료(호흡기 부착)를 하고 오진한 사실이 드러난 게 아닌가. 대법원 판결 후 병원 측이 계속 호흡기 제거를 미루는 걸 보고 하도 화가 나서 ‘병원이 대법원보다 상위기구냐’고 따지기도 했다.”

-병원이 왜 호흡기 떼는 걸 주저했다고 보나.

“존엄사는 치료 주권이 의사에서 환자로 넘어오는 걸 의미한다. 어느 의사가 탐탁하게 여기겠나.”

안혜리 기자



세브란스 주치의 박무석 교수
“숨 못 쉬어 호흡기 달아 … 오진 아냐”

-김씨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도 스스로 호흡하고 있다. 그동안 인공호흡기를 단 것은 오진 아닌가.

“그건 아니다. 지난해 2월 환자가 심폐 정지 상태에 빠지면서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후 환자 상태가 안정되면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려 수차례 시도했다. 인공호흡기는 단번에 제거하는 게 아니라 단계적으로 의존도를 줄이면서 환자가 견딜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호흡기를 제거한다. 김 할머니도 이렇게 했다. 하지만 인공호흡의 양을 1분에 10회 이하로 낮췄더니 매번 경고음이 울렸다. 할머니가 견디지 못한 것이다.”

-호흡기를 제거했지만 잘 견디고 있지 않느냐.

“경고음이 울린 상태에서 호흡기를 뗀다고 해서 환자가 반드시 숨지는 것은 아니다. 호흡기를 뗄 경우 환자가 견디는지 여부를 알아보는 검사(무호흡 검사)를 해야 한다. 일종의 실험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실험을 할 수 있나. 검사 도중에 김 할머니가 사망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세브란스병원 존엄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하는 식물인간 2단계에 속한다. 2단계 환자는 무호흡 검사를 할 수 없다. 만약 임종이 임박한 1단계 환자라면 그리 했을 것이다.”

-대법원은 김씨를 사망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했는데 그게 잘못된 것인가.

“대법원은 자문 의사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김 할머니를 식물인간 1단계(사망 임박)로 평가했다. 우리 병원은 처음부터 줄곧 2단계라고 주장해 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의학적 판단은 환자를 계속 진료해 온 주치의 의견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앞으로 김씨가 어떻게 될 것 같나.

“2~4주가 고비다. 이 기간 중에 폐렴이나 심장 마비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잘 넘긴다면 환자는 상당 기간 현재 상태를 유지하며 살 것이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대법원 오석준 공보관(부장판사)
“지금은 의학적 한계 드러난 상황”

-사망 임박 단계에 이르렀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틀린 것 아닌가.

“자발 호흡에 의한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연세의료원이나 의학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대법원은 이 같은 의학적 판정을 받아들였다. 호흡 기능을 영구적으로 상실한 경우에는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보니) 김 할머니는 호흡 기능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 의학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의학적 판단이 틀렸다면 이를 근거로 한 대법원의 판결도 잘못된 것 아닌가.

“지금 상황이 극히 이례적인 것은 맞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은 ‘불필요한 연명 장치를 제거하라’는 것이지, ‘사망에 이르게 하라’는 게 아니다. 김 할머니가 사망하는 게 판결에 부합되는 결과는 아니다. 판결의 핵심은 식물인간인 환자가 사망에 임박했을 때 치료 중단 의사가 있는지를 추정할 수 있고, 그 추정된 의사에 따라 불필요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의 평소 언행, 가족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치료 중단 의사를 추정할 수 있었고, 다수 의견은 김 할머니의 경우는 호흡기 제거가 가능하다고 봤다.”

-전원합의체에서 호흡기 제거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는데.

“김 할머니는 미국의 첫 존엄사 사례였던 캐런 퀸란의 경우와 비슷하다. 퀸란은 호흡기 제거 후에 10년을 더 살았다. 대법관 중에도 이 같은 사례를 들어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를 의학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호흡기를 제거한 이후에도 환자가 사망하지 않는다면 이는 오히려 호흡기 장착 자체가 불필요한 신체 침해였던 것이 된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게 다수 의견이었다. 김 할머니와 같은 상황이 생겨도 존엄사 인정 판결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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