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홍경호교수 '고금소총' 재구성 도서출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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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내가 허리가 휘게 일을 하고도 또 이 일을 하는 것은 나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당신을 위해서야. 숫돌에 칼을 가는 것이 칼을 위해서가 아니라 숫돌을 위해서라는 말이오?그럼!

꼬챙이로 귓속을 긁는 것이 귓속 가려움 때문이지 꼬챙이를 위해서라 할 수 없지 않소. " 시골 노총각이 어린 신부에게 장가들어 밤이면 밤마다 신부를 괴롭혔다.

참다못한 색시가 중매든 할머니에게 찾아갔더니 까마귀 고기를 먹이란다.

'건망증이 심해 그 일을 잊을것이 아닌가?' 헌데 웬걸. 신랑은 몇배로 괴롭혔다.

'우리가 언제 그 일을 했단 말이오?' 하고 말이다.

단군 이래 최대 위기라는 말도 돌지만 사실 예로부터 누구나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왔다.

평민들은 양반들의 억압에, 양반들은 허위적인 유교윤리에, 여자들은 남존여비 풍토에 각각 눌려 숨막혀 하면서도 쉽게 목을 메지는 않았다.

오히려 해학과 익살로 어려움을 이기며 살아왔다.

그 역할을 한 것 중 하나가 '고금소총 (古今笑叢)' 이다.

단순한 심심풀이용 음담패설 모음집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어려울 때마다 그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웃음을 전해준 우리 민족의 민중문학인 셈이다.

바로 이 '고금소총' 이 현대적 감각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소설가 홍경호 (한양대 교수) 씨가 '고금소총' 을 재구성해 '웃으면 일어선다' 와 '사랑해야 이긴다' 2권으로 묶어 펴낸 것 (도서출판 금토刊) . 웃음을 잃어버린 이 시대에 옛 글에서 여유와 용기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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