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각 빅딜' 누가 깼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빅딜 합의를 깬 기업은 어디인가.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16일 삼성.현대.LG그룹간 빅딜이 일단 무산된 데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자 정.재계는 어느 쪽이 대통령의 노기 (怒氣) 를 자극했는가에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다.

청와대는 기업이름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박지원 (朴智元) 대변인은 이렇게만 밝혔다.

"처음에는 한 기업 (A) 이 빅딜을 거부하다 정부에 '하겠다' 며 연락을 취했다.

그 소식을 듣고 김중권 (金重權) 청와대비서실장이 지난 10일 빅딜이 곧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기업 (B) 이 안하겠다고 해 빅딜이 좌절됐다. "

그렇지만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A는 LG고 B는 현대라고 확인했다.

당초 박태준 (朴泰俊) 자민련총재를 중심으로 한 여권이 구상한 빅딜은 삼성자동차와 현대반도체를 교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가 자동차산업 공급과잉 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시하자 LG를 포함한 '삼각 빅딜' 이 추진됐다.

삼성차를 현대가 인수하는 대신 현대가 유화를 LG에 넘기고, LG는 반도체를 삼성에 주는 방안이 모색된 것이다.

현대는 여기에 수긍했다.

그런데 LG가 반발했다.

빅딜보다는 반도체 지분을 인텔 등 외국기업에 넘기는 게 유리하다며 버텼다.

그러다 9일 빅딜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미국에 있던 구본무 (具本茂) LG회장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LG가 개인휴대통신 (PCS) 사업과 관련된 비리 수사로 어려운 입장에 있음을 감안한 결정이었다는 게 정.재계의 대체적 분석이다.

이로써 빅딜은 무난히 성사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현대가 변심해 헝클어졌다" 고 정부관계자들은 말한다.

실제로 현대는 金실장 발언에 유난히 반발했다.

현대는 11일 비공식적으로 "빅딜 합의설은 사실무근이며, 빅딜을 요청받은 적도 논의한 적도 없다" 고 주장했다.

현대가 빅딜을 거부한 까닭은 뭘까.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자동차산업 공급과잉 문제를 우려한 데다 1조3천억원을 들여 최근 완공한 석유화학을 LG에 넘기는 게 아깝다고 생각했기 때문" 이라고 봤다.

유화를 포기하는 데 따른 그룹내 후계구도 정리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정주영 (鄭周永) 현대명예회장은 방북 (訪北) 직전 朴총재측이 빅딜 막후채널로 가동한 황경로 (黃慶老) 전포항제철회장의 면담요청을 "북한에 다녀와서 보자" 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