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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찾은 자리, 소리는 내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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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남자가 소리를 하면 굶기 딱 좋다”고 엄포를 놓 던 어머니 고주랑 명창의 노력은 실패했다. 아들 이희문(33)씨는 돌고 돌아 결국 ‘어머니의 소리’ 경기소리로 돌아왔다. [이희문씨 제공]

경기소리 명창 이희문(33)씨가 ‘태어나기 전에 들었던 소리’에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의 어머니는 고주랑 (63)명창.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12잡가 이수자다. 1970년대에 경기소리의 ‘스타’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첫 번째 꿈=정작 이씨의 우상은 ‘보고싶은 얼굴’을 부른 가수 민해경씨였다. “민해경 백댄서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하루에 두 시간씩 공부하듯 춤 연습을 했죠.” 하지만 또래 친구들이 가요를 흥얼거릴 때는 경기 민요를 불렀다. 어머니가 부르던 ‘경기 12좌창(앉아서 부르는 12곡의 경기 민요)’를 모두 외울 정도였다.

그 다음은 생물학이었다. 단국대학교 생물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학교’ 대신 ‘동아리 방’을 다닌 학생 중 한명이다. 16㎜ 카메라로 영화를 찍는 서클이었다. 군 제대 후 복학 대신 일본 유학을 택한 건 이때 맛본 영상의 매력 때문이었다.

그래서 꿈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도쿄의 동방방송 전문학교 프로모션 영상과에 진학했다. “헌데 어이 없는 일이 벌어졌어요.” 비자 문제였다. “취업 비자 신청 기간을 놓치는 바람에 일본에 머물 수가 없었어요.”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니던 그에게는 “다 버리고 와야하는 순간”이었다. 맥 빠지게 돌아온 한국에서는 인맥을 동원해 뮤직비디오 제작판에서 일했다.

◆갑작스러운 질문= 이랬던 그가 서울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대상, 온나라국악경연대회 문광부 장관상, 전국민요경창대회 최우수상 등을 휩쓸며 무형문화재 이수자의 주인공이 된 계기는 무엇일까. 26세 나던 어느 날, 그에게 뜻밖의 물음이 찾아온다.

“ 어머니 공연을 보러 간 날이었어요. 제 옆에는 어려서부터 이모라 부르며 따르던 이춘희 명창이 앉아 계셨고요.” 이춘희 명창이 “소리하고 싶은 생각 없니”라고 물었고, 그는 인생에서 처음 받는 질문이란 걸 깨달았다고 한다. 첫 질문에 ‘무장해제’된 그는 “별 생각 없이 ‘네’라고 하는 순간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됐다”고 했다.

27세에 서울예술대학 국악과 신입생이 됐고 용인대학교에 편입, 졸업 후 중앙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물론 “왜 그 험한 길을, 그것도 뒤늦게 가려고 하느냐”는 어머니를 설득하는 긴 과정도 있었다.

이렇게 먼 길을 돌아 ‘어머니 뱃속 소리’에 도착한 그는 ‘한오백년’ 등 ‘메나리조’에 특출한 재능을 가진 소리꾼으로 성장했다. 대중음악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던 그의 재능은 국악계에 새 바람을 불러왔다. 춘향 이야기로 ‘소리극’ 무대를 연출하기도 했다. 국악평론가 윤중강씨는 그를 두고 “국악계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재능이 보인다”고 말한다.

이씨가 어린 시절 좋아했던 가수 민해경씨는 국악예술고등학교 출신이다. 이씨는 “어릴 땐 국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하지만 그 몸에 흐르는 핏줄은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김호정 기자

◆차세대 명창들의 향연 ‘6인6색’=7월 5일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면당

◆화요상설무대=7월 21일 오후 7시30분, 서울 필동 남산국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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