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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통령 방미]8박9일의 결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8박9일의 미국 방문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신뢰' .그동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부분이다.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金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경제를 개혁하는 노력에 미국은 강력한 지지를 보낸다. "

클린턴 대통령의 지원 약속은 한국의 대외신인도를 올리고, 외국자본 유입을 촉진하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리측 방미 (訪美) 팀은 자신한다.

. 미국으로부터 단순한 수사 (修辭)가 아닌 실효성 있는 협력을 얻어냈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라는 게 이들의 전망이다.

한.미투자협정 체결합의, 미국의 제2선지원 확인, 미국 투자조사단 파한 (派韓) 약속, 미국 수출입은행의 20억달러 무역금융차관 제공 등은 한국의 국제신인도 제고와 외국자본 유치에 한결같이 도움되는 것들이다.

金대통령은 미국의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국제통화기금 (IMF) 측을 설득, 경제운영의 탄력성 강화라는 수확을 거뒀다.

재정적자에 대한 IMF 동의를 이끌어냄에 따라 보다 실효성 있는 실업대책을 세울 수 있게 됐고, 금융구조조정 속도도 올릴 수 있게 됐다.

IMF로부터 금리인하에 대한 이해도 얻었으므로 산업기반 붕괴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게 됐다.

세계은행으로부터는 구조조정차관 20억달러를 연내 제공받는다는 데 원칙적인 동의를 이끌어 냈다.

이런 성과는 金대통령이 철저한 경제개혁과 국내외자본 동등대우를 다짐하고, 또 다짐했기 때문에 이뤄진 것이라는 평가다.

그간 세계의 전주 (錢主) 들은 한국의 개혁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진의를 의심, 투자를 주저하는 경향이 있었다.

金대통령은 미국 민간에 대해서도 공을 들이는 실리외교를 펼쳤다.

金대통령은 뉴욕 증권거래소와 워싱턴 미 상공회의소 연설을 통해, 그리고 실리콘밸리 벤처기업가 등 경제인 접견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를 대접할 것임을 확약했다.

그에 맞춰 GM은 대우와의 20억달러 합작을 金대통령 방미 선물로 내놓았다.

金대통령은 방미중 산업자원부 주관으로 뉴욕.로스앤젤레스에서 한.미투자포럼을 열게 해 당장 21억5천만달러의 투자를 확정짓는 실적도 올렸다.

金대통령의 방미로 세계 최대투자국인 미국의 한국에 대한 믿음이 두터워졌고, 그 결과 1백억달러가 넘는 달러유치가 이뤄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과신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자본은 여전히 한국을 냉정하게 저울질하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얘기다.

金대통령은 미국 기업들로부터 쇄도한 면담요청을 거절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들 기업은 한국이 정말로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인지 金대통령으로부터 직접 확인하고 싶어했다.

그만큼 외국자본은 인색.냉철하다.

때문에 조속하고도 일관성 있는 구조조정 노력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미국에서 시장경제를 외치고 있는데 안에서 그것에 반하는 얘기가 나오면 외국에 믿음을 주지 못한다.

金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과의 신뢰관계를 튼튼하게 했다는 평가다.

'김영삼정부' 때 드러났던 양국의 대북 (對北) 관련 갈등을 상당부분 해소하고 한.미 안보동맹을 다진 것도 두드러진 성과로 받아들여진다.

한.미 정상은 이산가족상봉 등 남북 당사자간 문제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한반도 평화체제.군축 등의 문제는 4자회담을 통해 논의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로써 대북 주도권을 둘러싼 한.미간 갈등소지는 거의 사라지게 됐다.

미국이 한국에 부담지우려던 대북 중유제공 문제도 미국이 전담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미.북관계 개선은 남북관계 진전과 보조를 맞춘다는 원칙을 확인하고,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문제도 한.미간 협의를 통해 풀어나가기로 한 것도 돋보이는 일이라는 평가다.

다만 대북제재 완화문제에 대해선 양국간 다소 인식의 차이가 있었다.

金대통령은 '햇볕정책' 의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기 위함인 듯 제재완화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과 미국의회.언론 등은 신중했다.

미국의 대북 경수로사업비 10% 분담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

金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경제지원을 얻는 게 급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야무지게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클린턴 대통령은 "金대통령이 미국의회를 설득해 달라" 며 비켜갔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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