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축산농 재고처리 '죽을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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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최근 서울시내 일부 대형유통업체에서 국내산 쇠고기를 수입쇠고기보다 싸게 팔아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현대백화점 본점의 경우 수입 로스앤젤레스 (LA) 갈비를 1백g에 1천8백원, 한우 갈비는 1천7백원에 팔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우 갈비는 1백g당 2천2백~2천4백원, 수입 LA갈비는 1천5백원으로 한우가 수입육에 비해 최고 60%까지 비쌌는데 상황이 역전된 것. 그런가 하면 경기도안산시에 있는 농수산물도매시장 앞에서 성업중인 축산물할인판매장 5~6곳에서는 한우 등심부위를 1백g당 1천원 정도에 팔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 이후 쇠고기 소비가 14%나 줄어드는가 하면 환율상승으로 수입쇠고기값이 오르면서 벌어지는 기현상이다.

쇠고기뿐 아니다.

계란.우유 등의 소비가 뚝 떨어지면서 재고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가 하면 산지 소값이 큰 폭으로 하락해 축산농가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농림부와 축협 등에 따르면 소값 하락을 막기 위해 정부가 매입.비축하는 수매육 재고량은 5월말 현재 6만3백마리 (1만3천여t) 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2만4천9백30마리)에 비해 2.5배 이상 급증한 것. 하루 수매육 판매량 (72t) 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무려 1백80일분에 이른다.

이런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산지 소값 (5백㎏ 수소 기준) 은 지난해 11월 2백40만원대에서 최근에는 지난 90년 이후 최저수준인 2백10만원 안팎으로 떨어졌다.

농림부 관계자는 "IMF사태 이후 산지 소값의 안정을 위해 지난 1월부터 하루 2백50마리이던 수매육우를 5백마리로 두 배 늘렸으나 쇠고기 소비가 급감해 재고가 누적되고 있다" 고 밝혔다.

정부.민간의 수입쇠고기 비축분도 88년 수입을 재개한 이후 최대치인 3만여t에 달하고 있다.

사정은 우유쪽도 마찬가지다. 올 들어 우유소비가 10% 이상 줄어들면서 우유를 가공한 분유의 재고는 5월말 1만6천t에 이른다.

이는 적정 재고량 (6천~7천여t) 의 2.5배 수준. 관련업계에서는 이같은 소비감소 추세가 계속될 경우 올해말에는 재고가 2만6천여t을 웃돌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밖에 제빵.제과업체 등 계란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곳이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산지 계란값 (대란 10개) 도 지난 1월 1천원대에서 최근 6백90원대로 떨어졌다.

축협관계자는 "계란의 경우 손익분기점이 10개당 8백원대여서 상당수 농가들이 출혈생산을 하고 있는 상황" 이라고 우려했다.

축협은 우유 소비를 늘리기 위해 오는 16일부터 우유값을 최고 10.8% 내리기로 했으며 앞으로 서울우유.매일유업 등 다른 유업체들도 이에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는 사육마리수를 감축하거나 잉여분을 대북 (對北) 지원으로 돌리는 등의 대책을 강구중이나 아직 뚜렷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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