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공화당보다 민주당이 핵 비확산의 의무감이 더 강하다. 오바마도 핵확산금지조약(NPT) 살리기와 비확산에 과거 어느 대통령보다 열성적이다. 그는 핵 없는 세계를 실현한 대통령으로 후세에 기억되고 싶어한다. 비확산의 수단은 유연하다. 그러나 비확산의 가치를 양보할 생각은 없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면 이란의 핵개발을 막을 수 없고, 이란이 핵을 가지면 미국의 중동평화구상의 뿌리가 흔들린다. 동북아의 핵 군비경쟁은 더 위험하다.
북한은 핵무기를 가져야 하고 미국은 핵 비확산을 위해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해야 한다. 두 입장이 맞서면, 6자회담은 북핵 해결에 더는 적합한 방식이 못 된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와 독자적인 금융 제재로 북한을 최대한 압박하면서 북한의 반응을 기다릴 참이다. 5자회담도 북한이 국제적인 제재에 더 버티지 못하고 협상 테이블로 나올 때 어떤 성격의 회담에서 무엇을 논의할까를 의논해 두자는 데 목적이 있다.
핵협상이 재개되어도 미국은 지금까지 하던 대로 북한의 매 단계 비핵화 조치에 일일이 보상하는 ‘누적(Incremental)방식’으로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북한이 매 단계 보상을 받고는 후퇴하고, 또 돌아와 다음 단계의 조치를 취하고 보상을 받는 방식은 통하지 않게 됐다.
북한은 ‘핵으로 세습’ 환상 버릴 필요
오바마가 밀릴거라 오산한 건 북의 실수
이제는 ‘뒤집지 못하는(Irreversible)’ 합의가 워싱턴의 키워드(Key word)다. 미국은 핵협상이 재개될 경우 비핵화 과정의 최종 단계인 핵폐기에서 출발하려고 한다. 북한의 모든 핵과 핵물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폐기와 보상을 논의하려고 한다.
미국의 잠정적인 결론대로 북한이 끝까지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미국은 핵 비확산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답변은 충격적이다. 오바마 정부 사람들은 말을 아끼지만 부시 정부가 초기에 추구했던 북한의 체제교체(Regime change)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끔찍한 과거 회귀다. 더 충격적인 것은 미국이 북한의 체제 교체를 행동으로 옮길 경우, 그 직전에 주한미군을 북한의 미사일 사정권인 한국에서 철수할 방침이라는 것이다. 북핵 사태가 미국의 북한 체재 교체 결행으로 악화되면, 미군은 떠나고 남한의 도시와 산업시설과 군사기지가 북한 미사일의 타깃이 된다는 의미다.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면 미국이 핵우산과 재래식 무기로 지켜주겠다고 확실하게 공약했지만, 그것이 한국의 ‘피해 제로’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남북이 주고받는 진군나팔 같은 강경 발언이 영 불안하다.
미국은 북한에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는 있어도 제재국면에서 대화를 구걸할 생각은 없다. 두 명의 여기자 문제를 핵협상과 연계할 생각도 없다. 그래서 북한이 바라는 앨 고어 전 부통령의 평양 방문에도 냉담하다. 오바마를 밀면 밀린다고 오산한 것이 북한의 실수다.
사태가 위중하다. 북한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핵무기로 강성대국이 되고, 26세 청년에게 세습되는 권력 기반을 닦겠다는 반시대적인 환상을 버려야 한다. 중국은 북한의 붕괴보다 핵을 가진 북한의 존속이 유리하다는 편협한 국가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 대북 제재에 적극 참여하고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중국을 움직이는 데 외교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한국은 제재 국면에서도 대화로 남북관계를 관리해 나가야 한다. 이 대통령은 8·15 연설에 북한이 뿌리칠 수 없는 제의를 해야 한다.
김영희 국제문제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