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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친구와의 가벼운 키스…뭐지, 이 설렘은

중앙일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한 여자가 우연히 만난 남자와 어쩌다 저녁식사를 함께 하게 된다. 분위기는 로맨틱하게 흘러간다. 남자도 여자가 싫지 않고 여자도 남자가 대략 맘에 든 눈치다. 그런데 헤어질 순간 남자가 여자에게 작별 키스를 하려고 하자 여자는 거절한다. 딱히 싫다는 건 아니다. “하고는 싶지만 안 하는 게 좋겠다. 가벼운 키스지만 하고 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이유다. 알 듯 모를 듯한 설명. 대체 그녀에게 키스에 얽힌 어떤 사연이 있기에?

남자의 재촉에 여자는 ‘키스에 관한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18일 개봉한 ‘쉘 위 키스’는 영화 속 또 다른 영화가 나오는, 이른바 ‘액자식 구성’이다. 제품의 정체를 아주 조금씩 밝혀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티저 광고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금발 여성(전성기의 카트린 드뇌브 같다!)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맛을 야금야금 보다 보면 어느새 그 안에 흠뻑 빨려 들어가고 만다. 남자와 관객은 어느새 한 배에 타게 되는 것이다.

실험실 연구원 주디트(비르지니 르도엥)와 수학교사 니콜라(에마뉘엘 무레)는 오랜 친구다. 주디트는 결혼했고, 니콜라는 싱글이다. 성별은 다르지만 동성 친구보다 훨씬 더 속내를 잘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다. 그런데 어느 날 니콜라가 “너무 외롭다”며 육체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키스를 해달라고 한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구호’ 차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주디트는 잠시 쭈뼛거리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육체적으로 외로운 친구를 돕는 거니, 까짓것 문제 있겠나.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한 키스는, 모든 걸 바꿔놓는다.

키스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앙증맞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니. ‘재미 없는 프랑스 영화’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었다면 이 영화는 ‘예외 리스트’에 넣어둬도 좋다. 키스나 섹스에 관해 자유분방하기로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프랑스 남녀가 키스를 할까 말까 심각한 고민을 하고, 혹은 키스를 하고 나서 묘한 감정을 느꼈는데 이게 과연 뭘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모습에는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주디트의 남편이 좋아하는 슈베르트를 비롯해 드보르자크·차이콥스키·베르디 등의 유려한 선율이 키스를 매개로 펼쳐지는 남녀 심리학의 배경 음악으로 쓰였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금발 미녀(줄리 가예트)의 말솜씨와 자태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그 옛날, 결혼 첫날밤이 지나면 아내를 무자비하게 죽였던 왕을 매혹시켰던 세헤라자데의 그것처럼.

이야기를 마친 여자와 남자가 나누는 기나긴 키스 장면은 침을 꼴깍 삼키며 이야기를 숨죽여 들었던 관객들을 위한 보너스다. 니콜라를 연기한 배우가 바로 범상치 않은 연출력을 선보인 감독 에마뉘엘 무레다.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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