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위기의 경제 이렇게 풀자]선진국의 21세기 준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일본 반도체 업계는 현재 삼성전자.LG반도체.현대전자 등이 과연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서도 설비투자를 계속할까 주목하고 있다.

기술진보 속도가 빠른 반도체 분야는 선행투자를 하지 않을 경우 경쟁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 반도체 전문가들은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면 경제위기를 극복하더라도 한국경제의 미래는 없다" 고 단언한다.

일본이 지난 4월 발표한 16조6천억엔 규모의 경기부양종합대책에서 정보통신 분야 등에 7조7억엔을 쏟아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야마사키 다쿠 (山崎拓) 자민당 정조회장은 "건설.사회복지사업보다 향후 성장속도가 빠른 산업의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경기부양에 유리하다" 고 말했다.

경기부양에도 양 (量) 보다 '미래 경쟁력 확보' 라는 질 (質) 을 더욱 중요시하는 것이다.

닛케이 비즈니스가 지난해 선정한 세계 경쟁력을 갖춘 1백개의 일본기업에는 소니.니콘.캐논.도요타 등 이미 친숙한 이름도 있지만 디스코.롬.시마노.코나미 등 매출액 5천억엔 이하의 생소한 이름의 중견.벤처기업이 72개나 등장한다.

일본 통산성도 기존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보고 2020년까지 정보통신.생명공학.노인용품.환경산업 등 10대 성장산업을 선정, 21세기 일본이 선진국으로 존속하기 위해선 이들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본이 미래 선도산업을 지정해 정부.기업이 힘을 합쳐 과감한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미국은 특별한 지원.육성 방안을 마련해 놓지 않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경제가 원래 그렇지만 정부는 '뛸 공간 (이를테면 정보고속도로.물류시스템 등 기반시설)' 을 마련해주고 독점규제 등 '심판' 을 보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미국에서는 컴퓨터.소프트웨어.의약품.정보통신.금융.유통.영화.테마파크와 같은 오락산업 등이 선도산업으로 꼽힌다.

국제 경쟁력과 성장가능성을 따져 자금과 두뇌가 이들 분야로 자연스럽게 몰리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위크지가 최근호에서 발표한 초고속 성장 2백대 기업중 80%가 이들 분야의 업체들이다.

도스에 이은 윈도로 세계 컴퓨터시장을 석권한 마이크로소프트나 비아그라 하나로 수십억달러를 벌어들일 파이저, '타이타닉' 이나 '주라기공원' 으로 엄청난 흥행수입을 올린 영화사 등은 미국이 앞으로 어떤 업종으로 먹고 살 것인가를 짐작하게 한다.

미 상무부는 '떠오르는 디지털 경제' 라는 보고서에서 미국의 정보기술산업의 성장속도가 다른 부문에 비해 2배 이상 빨라 사실상 미국경제를 주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개인용 컴퓨터 응용프로그램 시장만 놓고 보더라도 93년 3억달러에서 96년엔 10억달러로 급팽창했다.

실리콘밸리에는 아이디어와 창업에 대한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벤처기업만 4천여개를 웃돌고 있다.

물론 미래 선도산업 육성을 위한 미국과 일본의 접근 방식은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그들은 미래의 성장목표를 제시하고 그 나라의 산업구조에 맞춰 실천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

한국이 IMF 위기를 맞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은 '실천력의 결여' 에 있다고 볼 때 우리가 할 일은 너무도 자명한 것이다.

뉴욕.도쿄 = 김동균.이철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