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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호’ 추진체 수송 007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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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나로호’의 하단부 추진체가 19일 오후 러시아 화물기에 실려 부산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추진체를 실은 특수 무진동 트레일러를 견인차에 연결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제공]

19일 오후 1시 부산 김해국제공항. 러시아 국적 화물기 안토노프 An-124기가 착륙했다. 영화 007 시리즈 ‘어나더 데이’에 출연했던 이 초대형 화물기는 1982년 소련이 생산했다.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옮기는 수송기 중 하나다. 전체 길이 69.1m, 날개 길이 73.3m, 높이 21.8m로 한 번에 150t짜리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다.

아파트 7~8층 높이쯤 되는 이 거대한 수송기 머리가 올라가면서 화물칸이 드러났다. 푸른색의 원형 물체를 실은 길이 30m짜리 트레일러가 조심스레 내려왔다.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수송작전이 시작된 순간이다.

이 트레일러에 실려 있는 물체는 우리나라 첫 우주 발사체인 ‘나로호(KSLV-I)’를 우주 공간에 진입시킬 하단부 추진체다. 1단 엔진과 노즐, 연료탱크, 산화제 탱크로 구성됐다. 길이 25.8m, 지름 2.9m, 무게 140t짜리 초대형 액체 로켓엔진이다. 하단부 추진체 위에 지난해 8월 국내 기술로 개발한 상단부 추진체가 얹혀 우주로 날아간다.

교통량이 적은 이날 오후 11시30분 트레일러는 보안구역을 나와 부산신항으로 떠났다. 이 트레일러는 바퀴마다 공기충격흡수장치(에어 서스펜션)가 장착돼 있는 무진동 차량이다. 트레일러 앞뒤에는 러시아 기술자들이 각각 한 명씩 올라타 차량 진동을 측정하고 추진체의 상태를 꼼꼼히 점검했다. 도로 요철이 심해 진동이 조금만 있으면 러시아 기술자들이 무전으로 운행을 정지시켰다. 트레일러 아래로 내려와 상태를 점검한 뒤 다시 운행을 계속하는 일이 수십 차례 반복됐다.

김해공항을 떠나 명지나들목을 거쳐 부산과학단지 입구에서 U턴을 했다. 트레일러가 워낙 긴 탓에 U턴을 하는 데만도 30여 분이 걸릴 정도였다. 이 시간 동안 맞은편 차량들은 모두 통제됐다. 김해공항에서 신항까지 총 35㎞를 가는 데 걸린 시간은 모두 5시간이었다. 이 동안에 순찰차 4대와 소방차 등 10여 대가 호위했다.

이날 특급 수송을 앞두고 대한항공과 한진 측은 지난해 8월 9일 실제와 똑같은 상황을 설정해 놓고 수송연습을 했다. 트레일러가 한번에 회전할 수 없는 곳은 우회 길을 만들어 이동했다.

20일 오전 5시쯤 부산신항에 도착한 트레일러는 1시간 동안의 작업 끝에 길이 70m, 너비 15m의 초대형 바지선에 실려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기지로 떠났다. 추진체는 12시간의 항해 끝에 20일 오후 6시쯤 우주기지에 도착했다.

다음 달 30일 나로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0번째로 인공위성을 자력으로 쏘아 올린 국가가 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관계자는 “나로호 발사를 성공하면 한국형 발사체(KSLV-Ⅱ) 개발에 착수해 한국도 우주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계획이다”고 말했다. 

부산=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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