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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세상보기]축소전문가,어디 없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먹고 살기 어려운데 축구장은 무슨 축구장!

(그러나 결국 축구장은 짓기로 했다. ) 먹고 살기 힘든데 무슨 지방선거!

(그러나 결국 선거도 치렀다. ) 아무리 먹고 살기 어려워도 할 일은 따로 있다.

먹고 살기 어렵다고 '시큰둥' 일변도로 나가면 나라고 인생이고 그 꼴이 뭔가. (국민소득 5천달러때도 축구는 했다. 처음 지방선거는 보릿고개로 허기진 배를 움켜 잡고 치렀다. ) 그런데도 축구고 지자체 선거고 다 귀찮다는 '시큰둥' 이 최근 큰 공감을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먹고 살기 어렵게 된데 대해 우리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다.

마치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양, 그래서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로 우리 인생이 모두 무너지고 있는 양 우리는 징징 짜고 있는 것이다.

"너무 자책 (自責) 하는 얘기만 맙시다.

좋은 성적을 낼지 꼴찌에서 헤맬지 모르는 축구를 가지고 하도 야단법석을 떠니까 그렇지요. 선거도 이렇게 저질로 치르려면 아예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잖습니까. 이번 선거에 깡패와 사기꾼이 많이 출마한 나머지 앞으로는 후보의 전과사실을 미리 공개하자는 비명 (悲鳴) 도 나왔습니다.

" "솔직히 말해 서울에 강남구 의회 따로 있고 서초구 의원 따로 뽑을 필요가 있습니까. " "모르시는 말씀, 강남구엔 대모산이 솟아 있고 탄천이 흐릅니다.

서초구엔 우면산이 우뚝하고 양재천이 흐릅니다.

산수가 다르면 의회, 의원도 달라야 하지요. " "그런 위기 불감증적 발상이 축구 불필요론, 선거 무용론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 "사실 경제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요. 기업 도산과 노동자 해고가 과거의 빈곤을 다시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누구나 하고 있으니까요. " "그러나 부채를 줄이고 IMF관리체제를 탈피하고 다시 경쟁력을 찾자면 축소조정의 아픔을 견뎌야 합니다. "

"이른바 성장모델을 축소모델로 바꾸고, 거기에 적응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중산층만 해도 자신의 재산이 절반으로 준다고 할 때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내가 가진 모든 물질적 가치가 절반으로 줄고 그에 따라 인격마저 왜소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면 누가 그걸 참고 견딜 수 있겠습니까. " "러시아 7년 개혁의 결과가 2차대전 재산 피해액의 3배를 넘었답니다.

우리도 IMF시대 6개월만에 땅값만 2백조원이 줄었답니다.

바야흐로 성장의 시대는 가고 축소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축소 전문가를 찾아야지요. 제가 당신의 재산을 별 고통없이 절반으로 줄여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정치.경제 주도세력이 나와야 합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성장모델에만 익숙한 나머지 축소하는 방법을 모르는 게 탈입니다. "

"곧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계개편 후에는 달라지지 않을까요?" "구조개혁의 능력과 방법을 두고 정계개편이 이루어지면 신풍 (新風) 이 불지도 모르지요. 아무리 성장시대의 오류라지만 중국의 현대사를 참고해야 합니다.

마오쩌둥 (毛澤東) 은 참새가 곡식을 축낸다고 참새 소탕령을 내렸다가 메뚜기 떼의 창궐을 경험했답니다.

새 정부의 개혁도 때로는 교각살우 (矯角殺牛) 의 의구심이 듭니다.

축소의 경지를 넘어 농축 (濃縮) 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

"그렇게 너무 조심스런 말만 하지 맙시다.

축소를 지향하는 것은 물질생활만이 아닙니다.

이른바 거품, 즉 우리의 빚.허풍.이기심 등도 모두 절반으로 줄이면 되는 것 아닙니까. " "정말 그렇게 된다면 IMF시대는 우리에게 반성의 계기를 주는 하늘이 내린 기회입니다.

어서 축소 전문가를 찾아봅시다. "

김성호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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