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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으로’ 스타벅스의 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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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중반 스타벅스가 승승장구할 때 아무도 맥도널드가 스타벅스의 경쟁자가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2007년 매장 수가 1만5000개를 넘어서자 스타벅스의 앞길엔 거칠 게 없어 보였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어닥친 경기침체가 모든 것을 바꿔놨다. '저가의 다양한 고급커피'를 내세운 맥도널드의 맥카페가 야금야금 시장을 잠식하더니 이제 스타벅스의 아성을 위협할 수준에 이르렀다. 커피 등 음료 사업을 공격적으로 넓히고 있는 던킨도너츠, 간편 에스프레소 제품인 '네스프레소'를 앞세운 네슬레 등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최근엔 편의점 체인인 세븐일레븐마저 미국 내 매장에서 아이스커피를 팔겠다고 나섰다.

그동안 스타벅스는 이런 도전에 '맞불 작전'으로 대응했다. 일부 지역에서 라테, 아이스 아메리카노 등 기본제품의 가격을 확 내렸고, 1달러짜리 인스턴트 커피도 내놨다. 맥도널드의 맥모닝에 대응해 샌드위치 등 아침식사 메뉴도 개발했다.

그러나 어느 하나 뾰족한 대책이 못됐다. 오히려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스타벅스의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77%나 주저앉았다.

결국 하워드 슐츠 사장은 기존과 완전히 다른 카드를 내놨다. 원래의 명성을 얻게 했던 옛 방식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18일(현지시간) 공개한 스타벅스 내부 자료에 따르면 슐츠는 다음달부터 매장 내에서 수시로 원두를 갈도록 할 방침이다. 원두를 미리 갈아 놓으면 그만큼 향이 사라지므로 조금씩 갈아서 가장 신선한 상태의 커피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주문한 커피가 원두 상태부터 컵에 담기기 까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매장의 품격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거란 계산도 이번 조치에 깔려 있다.

사실 스타벅스의 초창기 영업방식이 이랬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면서 아침에 '오늘의 커피'로 쓰일 원두를 한꺼번에 갈아놓고 파는 식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2년 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직만 맡고 있던 슐츠는 "미리 갈아놓는 커피가 스타벅스 매장의 낭만과 볼거리를 없앴다"고 비난한 적이 있다. 지난해 스타벅스에 위기가 닥치면서 슐츠는 다시 CEO로 돌아왔다. 그리고 저가 커피들과 출혈 가격 경쟁보다는 원래 스타벅스가 가지고 있던 경쟁력에 집중키로 한 것이다. 스타벅스는 다음달 중으로 미 전역 7000여 개 매장에서 새로운 방식을 도입할 예정이다.

물론 스타벅스의 새로운 시도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게 문제다. 갈아놓은 커피가 떨어질 때마다 새로 원두를 갈아서 써야 한다면 고개들은 차라리 다른 음료를 선택하거나 매장을 나가 버릴 수도 있다.

스타벅스는 생산 방식을 효율화함으로써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라인더를 커피 내리는 곳에 가까이 옮겨 놓거나 원두 통을 그라인더 가까이 적재하는 등 작업 동선을 줄임으로써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의 시간 지체는 불가피하겠지만 고객에게 고급 커피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장점 하나만으로도 이런 단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는 게 스타벅스 측의 생각이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LBS) 게리 해멀 교수의 이론대로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에 다시 집중한 스타벅스가 과거의 영화를 되찾는데 성공할지, 아니면 단지 변화를 읽지 못한 순진했던 시도로 기억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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