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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사태 다큐멘터리 '태평천국의 문' 개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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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모든 학생들이 내게 묻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난 그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무엇을 위해서 우리가 피를 흘리는지…광장이 피로 물들 때 중국은 일어설 것입니다…" 89년 6월4일 베이징 (北京) 의 천안문 광장을 피로 물들인 '천안문 사태' .당시 시위를 주도한 여대생 차이링 (紫玲) 은 유혈사태가 있기 바로 전날 호텔방에서 가진 외신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89년 중국 베이징의 6월 '천안문 사태' 의 현장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태평천국의 문' (원제 : 천안문) 이 13일 코아아트홀에서 개봉된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18주기와 중국 6.4 천안문 사건의 9주기를 맞이하여' 라는 부제를 달고서. '태평천국의 문' 은 지난해 서울 다큐멘터리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가주최측인 삼성이 돌연 작품상영을 취소, 심사위원과 자원봉사단이 일괄 사퇴하는 등 논란을 불러일으킨 그 작품이다.

미국으로 망명해 현재 하버드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차이링은 이 다큐멘터리의 제작에 반대했고,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나 당시 외신기자가 홈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한 그녀의 모습은 지워버릴 수 없는 역사의 '한 순간' 으로 기록됐다.

당시 탱크행렬에 맨몸으로 맞섰던 무명의 시민 (후에 이름이 왕 웨이린으로 밝혀진 그는 타임지 선정 20세기 혁명가 20인에 선정됐으며 지금도 중국공안당국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은신중이다) 의 모습이 포착된 이 다큐멘터리의 첫 장면은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느낌마저 던져준다.

차이링은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89년 당시 베이징대 학생으로 이 저항운동의 핵심이었던 왕단 (王丹) , 우얼카이시 (吾爾開希) 등 수뇌부 학생들의 89년의 현장에서의 모습과 95년 당시의 생생한 인터뷰를 보고 들을 수 있다.

"운동기간에 순수했던 일, 잊을 수 없는 일과 수용할 수 없었던 일, 심지어 구역질나는 일도 있었죠. " 라는 그들의 얘기까지도. 만약 이 다큐멘터리가 단순히 '천안문 사태' 를 재현하는데 그쳤다면 3시간의 러닝타임은 지루한 '동어반복' 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66 - 77년 문화혁명 당시의 '섬뜩한' 현장, 등소평의 미국방문과 그에 따른 존 덴버의 축하공연 등의 중국의 현대사가 압축된 다양한 볼거리가 '전광석화' (電光石火) 처럼 스쳐간다.

89년 4월5일부터 6월4일까지의 천안문 사태를 담은 후반부 당시 주역들, 정부관리, 지식인들의 꼼꼼한 인터뷰를 역동적인 영상에 담아냈다.

중국정부도, 망명한 학생 지도자들도 이 영화에 반대하고 공격했다는 후문. 그러나 중국전문가들로부터 고증을 받고 9개 방송국의 당시 자료 화면과 2백50여시간 분량의 필름등의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역동적인 화면으로 엮어낸 제작진의 노력은 높이 살 만 하다.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롱보우그룹에 의해 제작됐으며 리처드 고든과 카르마 힌튼 부부가 함께 감독했다.

특히 인터뷰어 역할까지 맡은 카르마 힌튼은 미국인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이들은 '태평천국의 문' 이외에도 '중국의 마을' (1987) 등을 포함해 중국관련 다큐멘터리 7편을 제작한 '중국통' 이다.

13일 극장 개봉 후,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 등 대학가에서 상영된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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