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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시론

한·미 정상회담이 던진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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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이명박 한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통해 대북(對北) 정책에 굳건한 공조를 확인했다. 두 나라 지도자가 인식을 같이한 것은 거의 10년 만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0년 대북 문제에서 공조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한국군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파병 등으로 우호적 관계를 맺을 수는 있었으나, 정치적 동반자가 되는 데는 실패했다.

당초 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이념적 성향 차이로 정책 공조를 이루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은 두 정상의 차이를 극복하게 만들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가 하면 6자회담을 박차고 나섬으로써 한·미의 정책적 이견은 줄어들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수·출입을 제한하는 강도 높은 유엔 제재안을 강력 지지했다. 특히 북한 핵실험에 대해 어떠한 보상도 없을 것이라고 반복해 강조해 왔다. 무엇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정책을 명문화해 양국 간의 동맹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런 우호적 분위기와 정책 공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두 나라의 대북 시각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핵 해결에 집중해 왔다. 미국의 북핵 협상팀은 북한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기 위해 양자 또는 6자회담의 틀에서 북한과 만났다. 반면 한국은 미국처럼 사치를 부릴 처지가 아니다. 한국은 북한을 무시할 수 없으며 북핵이 유일한 문제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유화주의자들이 개성공단 등 남북 간 경제적 교류를 강조하나, 보수주의자들은 북한의 재래식 전력을 우려한다. 한국은 또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 매달려 한국을 무시하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대북 정책에 대한 현재의 한·미 공조도 북한의 강경 노선에 대한 대응 성격이 짙다. 만약 북한이 한국을 제치고 미국하고만 협상하겠다고 나선다면 미국이 말로는 동맹관계를 역설하면서 행동으로는 협상장으로 달려가 한·미 관계가 나빠질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에서 공약했듯 북한과 직접 대화를 추진했을 경우 한국은 방관자로 전락할 수 있다. 반면 이 대통령이 개성공단을 살리는 등 남북 경제 교류 강화에 힘쓴다면 북핵 제거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미국의 이해 관계와 부딪칠 것이다.

다른 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이번 정상회담도 합의를 이뤄내는 게 목적이었다. 적어도 양국 정상은 북한 문제에 대해 한목소리를 냈다. 양국의 확고한 공조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돌리는 긍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이 2000년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에 합의해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해 냈듯 말이다.

두 정상은 다른 현안에 대해서는 전적인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양측이 양보할 의사를 보이지 않는 탓에 한·미 FTA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2012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권 이양을 놓고도 긴장은 여전하다. 북한에 억류된 여기자와 개성공단 근로자 문제에 대한 양국의 접근법도 다르다. 이 대통령은 미국이 개성공단 근로자 문제를 여기자 문제와 함께 부각시켜주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오바마는 공개적인 언급을 뒤로 미뤘다.

결국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려면 한·미 공조를 강화하면서 북한의 무력 도발을 예방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다만 한·미가 북한의 위협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또 한·미 공조를 확대하는 것 못지않게 북한이 대화의 장에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존 페퍼 미 정책연구원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정리=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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