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억 날린 윤병강 일성신약회장의 은행주인 꿈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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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그동안 은행주로 날린 돈이 1천억원은 족히 넘을 것입니다."

올해 68세인 윤병강 (尹炳彊.일성신약 회장) 씨는 제약업계의 원로 경영인. 지난 61년 창업한 일성신약을 38년째 경영하고 있는 尹회장은 그러나 '은행가' 의 꿈을 더 간절히 키워왔다. 그는 이 필생의 꿈을 위해 가진 돈과 시간을 있는대로 쏟아부었다.

그러나 은행의 개인소유를 불허하는 정부의 금융정책은 끝내 그를 외면하고 말았다. 30년을 건 은행경영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 69년, 자본금 5천만원을 들여 동양증권 (대우증권 전신) 을 설립하면서부터. 그는 일찌감치 은행주와 한전주에 투자를 집중했다.

증자 경쟁에 힘이 부친 나머지 동양증권을 설립 4년만에 대우에 넘긴 뒤에는 은행주에 더욱 매달렸다. 가지고 있던 한전주식을 판 돈 역시 은행주에 쏟아부은 그는 70년대 중반만 해도 조흥은행 주식의 19%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였다.

그가 단지 주주로 만족하지 않고 은행경영에 첫번째로 도전했던 것은 지난 81년. 당시 전두환 (全斗煥) 대통령이 시중은행 민영화 방침을 밝힌데다 실제로 정부보유 시중은행주식을 민간에 매각하기 시작했기 때문.

"이제는 지분싸움이다 생각하고 전재산을 털어넣어 한일은행 주식을 사들였습니다. 한일은행이 5대은행 가운데 제일 경영이 건실했거든요." 당시 한일은행의 자본금은 1천억원. 주식이건 부동산이건 있는대로 팔아 2백억원 이상을 투입, 총지분의 16.5% (1천6백50만주) 를 사들였다.

단연 개인 최대주주였다. 이제 꿈을 이루는가 싶었다. 그러나 81년 가을 정부가 은행법 시행령을 고치면서 시중은행을 민영화하되 주주의 경영참여는 배제하면서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청와대에 탄원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83년초에는 화가 나서 당시 강경식 (姜慶植) 재무장관과의 조찬자리에서 "주식은 팔아먹고 경영에는 왜 참여를 안시키느냐" 며 대판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집 (주식) 을 팔았으면 명도를 해줘야 할 게 아니냐고 따졌지요. 姜장관 답변이 집은 못넘겨줘도 셋방은 드리겠다고 하더군요. "

그러나 정부가 은행경영에 주주의 참여를 허용하는 최소한의 장치로 도입했던 비상임이사회의 구성요건에 대주주는 배제하는 바람에 그는 '셋방살이 (비상임이사)' 마저도 얻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은행경영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정권이 바뀔 때면 거론되곤 하던 '주인있는 은행' 논의가 그를 잡아끌었다.

80년대 후반 증권투자 바람이 불면서 은행주를 샀다 팔았다 하는 투자만으로도 짭짤한 재미는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마지막 기회' 는 89년이었다.

"그때 한일은행 주식이 2만2천원까지 갔어요. 내가 보유한 한일은행 주식의 평균 매입가격이 1만1천원이었으니 두배는 남길 수 있었지요. "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한일은행 보유지분은 4%선, 주식수로는 6백70만주에 달한다. 89년에 팔아치웠다면 적어도 7백억원이상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미련이 이런 기회를 빼앗아갔다. 군인정권이 끝나고 90년대가 되면 반드시 은행의 실질적인 민영화가 이뤄지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문민정부에 특히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그가 얻은 것은 지난해 비상임이사회가 되살아나면서 한일은행 등에 비상임이사 자리를 얻은 것이 고작이었다.

그동안 주가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난 3월 한일은행 주가가 2천5백원대로 떨어졌을 때 아내가 울면서 호소했다. 이제라도 제발 은행주 털어버리고 시골에 내려가서 여생을 보내자고.

"아내에게 호통을 쳤어요. 집념 하나로 오늘까지 살았는데, 어떻게 포기하느냐구요. " 5월하순 한일은행 주가는 한때 1천원 아래로까지 떨어졌다. 허무했다.

불운은 그뿐이 아니었다. 제일은행 주식 1백35만주가 최근 감자 (減資)가 실시되는 바람에 8분의1로 줄어들어버렸다. 여기서도 1백50억원 이상을 날렸다.

"돈보다도 너무 억울했습니다. 주주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배당금 한번 제대로 못받고 1원 한푼 대출결정에 관여해보지도 못한 주주들이 왜 은행부실에 책임을 지고 감자를 당해야 합니까. 관치금융으로 은행을 부실화시킨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

그는 아직도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엄청난 돈을 날리고 수모도 겪었지만 은행다운 은행을 한번 경영해보고 싶다는 꿈만은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진작 주인 있는 은행을 만들어 주었더라면, 정부가 여기 저기 대출해주라는 간섭이 없었더라면 우리 은행들이 이 꼴을 당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그의 확고한 믿음이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해야 한다는 정부의 설명도 "결국 은행을 수중에서 놓지 않으려는 속셈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일 뿐" 이라고 지적한다.

한 (恨) 은 나이마저 잊게 하는 모양이다. 그의 간절한 바람은 "5대 시중은행만큼은 외국인들에게 넘기지 말고 국적은행으로 유지해달라" 는 것. 이 은행들이 외국인 손에 넘어가는 날이야말로 그가 평생을 키워온 꿈을 꺾어야 하는 날이기 때문일까.

손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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