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시위대, 인터넷 메시지 따라 결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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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난 12일 이란 대선에 부정이 있었다며 재선거를 주장하는 시위가 닷새째 이란 전역을 휩쓸었다. 시위를 이끌고 있는 개혁파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는 17일(현지시간)에도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대규모 시위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전날 저녁 발표된 “선거 시스템하에서 원하는 바를 추구하라”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AP통신은 이에 대해 “최고지도자와 이란 신정(神政) 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direct challenge)”이라고 평했다.

◆무사비 지지파, 침묵 시위=무사비는 17일 자신의 웹 사이트에 올린 글을 통해 “우리는 부정 선거에 저항하는 평화로운 시위를 벌였다”며 “우리의 목표는 선거 결과 자체를 무효화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무사비는 또 “정부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탄압으로 시위에 나선 많은 이가 다치거나 숨졌다”며 “17일 오후 사원에 모이거나 평화 시위를 벌이며 유족들에 대한 연대감을 보여 주자”고 당부했다. 무사비 지지자들도 e-메일을 통해 “테헤란 광장에 모여 침묵 시위를 벌이자”며 동참을 촉구했다.

200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란의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인 시린 에바디는 이날 유럽 라디오자유방송과 전화 인터뷰에서 “현 상황에서 재개표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며 “국제단체의 감독하에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또 “체포된 시위대를 아무 조건 없이 석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해외에서도 시위=해외에서도 이번 대선 결과에 반발하는 시위가 잇따랐다. 프랑스에서는 이란인들이 이란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아마디네자드는 대통령이 아니다”는 구호를 외치면서 재검표를 요구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함부르크·베를린과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이란인들이 항의 집회를 열었다.

국제사회의 반응은 엇갈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란 사태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16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이란 관계를 볼 때 미국 대통령이 이란 선거에 간섭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평화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하는 것은 우려된다”며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며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란의 집권 세력이 대선에서 정당하게 승리했다면 왜 무자비하게 반대파를 탄압하는지 묻고 싶다”며 이란 정부를 비판했다. 반면 중국·러시아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재선 축하 성명을 냈다.

◆시위대, 인터넷으로 결집=무사비를 지지하는 젊은 층들은 이란 정부가 언론 매체를 통제하자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으며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단문 메시지 송수신 서비스인 트위터, 싸이월드와 유사한 페이스북 등이 주요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시위대들은 시위에 앞서 ‘오후 5시까지 시위 계속’ ‘자동차를 이용하지 말 것’ 같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에 이란 정부가 이 같은 메시지·사이트 차단에 나서자 해외 거주 이란인들은 검열을 피해 메시지를 교환할 수 있는 사이트를 새로 개설하는 등 ‘사이버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트위터 본사도 이란인들의 의사소통을 돕기 위해 예정된 서버 정기 점검을 연기했다. 현재 이란 인구 7000만 명 중 인터넷 이용자는 230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최익재·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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