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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장기기증운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 93년 11월 영국을 비롯한 세계 20여개국에서는 브리티시 - 캐나디안 TV가 제작한 '인체부품 사업' 이란 다큐멘터리가 일제히 방영됐다. '끔찍한 장기 (臟器) 매매의 희생자' 라는 아르헨티나인 두 명을 등장시킨 이 프로는 시청자들을 공포와 충격속에 몰아넣었다.

그들이 정신병원에 환자로 입원해 있을 때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각막 (角膜) 이 제거됐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가 방영된 지 나흘 후 아르헨티나의 한 TV에 출연한 이들은 각막 강제제거가 사실이 아니며 실제로는 어릴 때 병을 앓아 시력을 상실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들의 의료기록도 이를 뒷받침했다. 95년4월에는 브라질의 신문들이 상파울루의 한 종합병원에서 급사한 한 어린이에 관한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부검 결과 그 어린이의 시신은 두 눈이 없어지고 복부가 톱밥으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그 무렵 어릿광대 차림의 두 남자와 발레리나 차림의 금발 여자가 작당해 어린이들을 폴크스바겐 밴 안으로 유인해 살해한 다음 장기를 도려내 부자나라에 팔아먹는다는 파다한 소문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러나 죽은 어린이의 부모와 변호사조차도 의사들이 실수를 덮어버리려 기관을 제거했으리라는 견해를 피력했고, 장기 밀매와 관련한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장기 밀매를 위한 어린이 유괴살해에 관한 소문은 전세계에서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남미쪽에서 특히 심하다.

손상된 인체를 타인의 장기로 대체하는 이식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나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88년 유럽의회가 의결한 장기매매 근절 결의안도, 뒤이은 세계보건기구 (WHO) 의 장기이식 지침안도 모두 장기 밀매행위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데 뜻이 있다.

인공장기의 개발과 원숭이 등 동물의 간 (肝) 따위를 인체에 이식하는 기술이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막 죽은 사람이나 죽어가는 사람의 장기와 비교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팔팔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음과 죽음 이후의 문제를 잘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엊그제 경기도 용인의 한 교회에서 1천여명의 신도가 장기기증을 집단서약했다는 흐뭇한 소식이다.

이 삭막한 시대에 이야말로 '헌신 (獻身)' 의 참모습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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