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요구 조건도 없이 납치 3일 만에 살해 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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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에서 발생한 한국인 여성 엄영선(34·여)씨 피살사건을 놓고 어느 단체의 소행인지, 왜 살해까지 했는지에 대해 외신마다 엇갈린 분석을 내놓고 있다. 외국인 살해 수법으로 봤을 때 수니파 알카에다의 소행 가능성이 있지만 사건 발생 지역이 시아파 장악 지역이라 여러 의문점이 남는다.

◆이례적인 외국인 인질 살인=치안이 불안한 예멘에서 외국인 납치 사건은 빈번했지만 인질들은 대체로 하루에서 수주일 안에 무사히 석방됐다. 외국인 인질들이 납치된 지 수일 만에 살해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인 여성이 살해된 예멘 북부 사다 지역은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고 시아파 부족 세력이 장악한 곳이다. AFP·로이터·dpa 통신 등 대부분의 외신은 “이번 납치를 주도한 세력은 알후티 그룹”이라고 보도했다. ‘후티 자이디’로도 불리는 알후티 그룹은 시아파 무장 부족 세력이다. 2004년 지도자인 후세인 바드르 에딘 알후티가 정부군에게 피살된 이후 정부군과 내전을 벌이고 있다. 시아파 세력이기 때문에 수니파 국제 테러조직인 알카에다와의 연관성은 입증된 것은 없다.

그동안 알후티 그룹은 외국인 인질 납치를 중앙정부와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주로 사용했지 실제로 외국인을 살해한 경우는 드물다. 이번 납치 사건 직후 알후티 그룹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와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알카에다가 살해했나=AP·CNN 등 외신은 납치 살해 사건이 알카에다에 의해 자행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시아파가 장악한 지역에서 수니파인 알카에다가 진출해 외국인을 납치·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알카에다가 인질을 살해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납치 사건이 발생한 12일 알카에다 예멘·사우디아라비아 통합지부의 자금담당 책임자인 하산 수헤인 알완이 예멘 보안당국에 체포된 것에 대한 보복일 수 있다.

최근 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 소탕 작전이 벌어지면서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예멘과 소말리아로 이동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16일 보도했다. NYT는 “알카에다의 새 요새로 예멘과 소말리아가 부상하고 있어 미국 정보 당국이 양국을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잔혹하게 살해됐을 가능성도=AP는 15일 처음 보도할 당시 현지 관계자를 인용, 인질들의 시신이 크게 훼손된 채 발견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다른 외신들이 ‘총격 살해’라고 보도하자 신체 훼손 내용을 기사 뒷부분에 배치했다.

한국시간 16일 오후 11시까지 예멘 정부가 한국과 독일 정부에 공식 통보한 사망자는 독일인 2명과 엄씨 등 3명이다.

AFP·dpa는 현지 보안 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납치된 외국인 9명 중 어린이 2명을 제외한 시신 7구가 발견됐다. 어린이 2명은 무사히 돌아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AP는 15일 “9명 전원이 살해됐다”고 전했다가 16일에는 “6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로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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