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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살리기 예술가들의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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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작가 선생님이 간판이 없다며 기둥에다 이렇게 상호를 그려 주고… 천장에 매단 것도 작품이야. 난생 처음 사진작품 모델로도 등장했고 작품도 많이 봤어. 이제는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지….”

대구 방천시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시장통에 전시 중인 금속으로 만든 돈키호테 동상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9일 대구시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16년째 이곳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황계태(67)씨는 두어 달 전 시장에 들어와 이웃이 된 예술가들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황씨는 “작가들이 어두운 시장 분위기를 확 바꿔 놓았다” 라고 말했다.

황씨의 반찬가게 왼쪽은 정태경(56) 화백이 직접 유화를 그리고 작품을 전시하는 작은 미술관이다. 반찬가게 오른쪽은 생선가게. 그 오른쪽은 또 홍정근(49) 상감공예가의 공방이자 전시장이며, 길 건너편은 경일대 석재현(41) 교수 등이 운영하는 사진 갤러리다.

정태경 화백은 “시장 속 갤러리는 상인들과 소통하고 후배들의 전시 공간으로도 활용된다”며 “점포를 새로 디자인하고 상품을 새로 디스플레이해 보기 위해 1년쯤 더 머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 화백은 상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그의 그림이 최근 이곳에서 450만원에 거래된 것. 상인들은 수백 만원짜리 작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겠다며 수시로 들른다.

홍정근 공예가도 방천시장에서 유명하다. 그의 공방에는 ‘부처 고기를 먹다’라는 10억원 가격이 붙은 상감 금속공예 그릇이 전시돼 있다. 그가 꼬박 2년 걸려 만든 작품이다.

대구 중구청이 죽어가는 방천시장을 살리자며 빈 점포에 예술가들을 유치한 ‘방천시장 예술 프로젝트’가 다섯 달째를 맞았다. 예술기획사를 운영했던 윤순영(57) 중구청장은 “폐허로 변해 가는 도심의 재래시장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예술 접목을 통해 도심 재창조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방천시장은 1970년대까지 점포 수가 1000여 개에 이르던 대구의 3대 시장이었다. 백화점 등에 밀려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현재 점포는 70여 개로 줄었고 2∼3년씩 비어 있는 점포도 생겨났다.

예술가들은 현재 15개 점포를 얻어 모두 4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중구청은 5월부터 두 달간 한 달에 5만∼10만원의 빈 점포 임차료와 재료비 등 5000만원을 작가들에게 지원했다. 지역의 중견작가들은 새로운 실험에 동참했다. 재래시장이라는 치열한 삶의 현장을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받아들였다.

상인들은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예술은 호사로 여겨졌고 공무원은 생색을 내다 그치겠지 싶었다. 방천시장 신범식(63) 상인회장은 “시큰둥했던 상인들이 작가와 학생들이 찾아오고 시민들의 발길이 늘면서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6월 말이면 계약이 끝나기로 돼 있던 작가들은 최근 임차 기간을 1년씩 연장했다. 사람을 모으는 아이디어는 계속됐다. 작가들은 각종 예술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색소폰 공연, 주말 무료 영화 등을 마련했다.

대구=송의호 기자 ,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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