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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패망 앞둔 일제, 맹수 독살령 내려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1986년 여름 폭우에 무너진 맹수사를 탈출해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 재규어가 청계산 계곡에서 포수에 의해 사살됐다.

‘창경원 꽃사슴 머리 잘린 채 발견’.
1961년 10월 13일 주요 조간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한 기사의 제목이다. 일명 ‘녹두(鹿頭) 사건’으로 불린 이 이야기는 한국 동물원 100년 역사 중 세상을 가장 떠들썩하게 만든 일 중 하나다. 대만에서 들여온 꽃사슴은 당시로서는 희귀 동물로 취급돼 아주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런 꽃사슴이 머리가 통째로 잘린 채 발견되자 동물원은 발칵 뒤집혔다. 경찰은 녹용을 노린 범행으로 추정하고 수사를 했지만 범인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사건이 잊혀질 무렵인 64년 백모(당시 47세)씨가 범인으로 체포됐다.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며 자칭 도사 행세를 한 백씨는 “녹용을 먹고 힘을 기른 다음 코끼리를 타고 북진통일을 하려 했다”고 횡설수설해 경찰을 당혹스럽게 했다. 오창영(82) 전 동물부장은 “동물원에서 기르던 다람쥐 한 마리가 죽어도 시말서를 쓰던 시절이라 꽃사슴의 죽음은 대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창경원에서 서울대공원으로 동물원을 옮긴 지 2년 만인 86년엔 맹수 한 마리가 우리를 탈출했다. 동물원을 만들며 깎아 내린 산이 한밤중 폭우에 무너지며 재규어 사육장의 지붕을 덮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뚫린 지붕을 통해 탈출한 재규어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재규어 탈출 기사 보도는 서울과 과천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경찰 1000여명이 투입돼 청계산 일대 수색에 들어갔다. 근처 농가에선 기르던 토끼가 없어졌다는 얘기도 나왔다. 수색 3일째, 민간인 포수와 수색견이 청계산 자락에서 재규어를 발견해 사살했다.

한국 동물원 100년 동안 동물들의 희생의 역사도 적지 않다. 인간의 욕심과 부주의ㆍ무관심뿐 아니라 전쟁으로 동물들이 희생됐다. 45년 7월 패전을 앞둔 일본은 창경원에서 사육하던 동물이 골칫거리였다. 당시 창경원 동물원 회계과장 사토는 전 직원을 모아 놓고 “사람을 해칠 만한 동물을 모두 죽여야 한다”고 명령을 내렸다. 그는 “미군 폭격으로 동물들이 우리를 뛰쳐나와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라며 “지령이 도쿄로부터 떨어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육사들에겐 “동물들의 먹이에 몰래 넣어 두라”며 극약을 나눠 줬다. 코끼리ㆍ사자ㆍ호랑이ㆍ뱀ㆍ악어 21종 38마리가 그렇게 독살됐다. 동물들이 죽던 날 밤 창경원 일대 시민들은 맹수들의 울부짖음을 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50년 한국전쟁으로 동물들은 또 한 차례 수난을 당해야만 했다.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서울이 북한군에 떨어지고 서울 시민들이 피란길에 나섰지만 사육사 일부는 동물원에 남아야 했다. 사육사들의 노력으로 전쟁 초기 동물들은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이듬해 중공군이 개입해 1ㆍ4 후퇴를 할 때는 사육사도 모두 짐을 쌀 수밖에 없었다. 51년 3월 서울을 재수복한 후 창경원 동물원의 풍경은 참담했다. 창경원 사육사로 일했던 고 박영달씨는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동물사는 모두 열려 있었지만 살아 움직이는 동물은 새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낙타·사슴·얼룩말은 도살된 듯 머리통만 남아 있었고, 여우나 너구리·오소리·삵 등은 굴과 돌 틈에 끼여 죽어 있었다. …(중략) 모두 그렇게 굶어죽고, 얼어죽었다.”

고성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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