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에세이]첨단으로 달리는 러 뇌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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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전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러시아인들은 선물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특히 민주적 제도나 투명한 절차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데다 관리들의 권한이 지나치게 막강하다 보니 선물을 주고받는 방법과 특혜를 주는 기법이 세계 최고수준으로 발달해 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영악해 위험한 선물은 절대로 받지 않는다. 그래서 선물을 주는 측과 받는 측이 안심할 만한 기상천외한 상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물론 러시아도 뇌물성 거래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률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뇌물과 선물을 주고받는 방식도 점점 교묘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한 사업가 (30) 는 귀국하자 마자 친구들에게 VTM (Visa Travel Money) 카드 자랑이 한창이다. VTM이란 미리 1백달러에서 1만달러까지 은행에 돈을 입금한 뒤 거기에 해당하는 카드를 발급받아 가맹점 등에서 현찰처럼 사용하는 일종의 전자지갑이다.

크레딧 카드와 달리 발급과정이 복잡하지 않고 마음대로 양도할 수도 있어 요즘 모스크바의 졸부들 사이에 선물겸 뇌물로 인기를 끌고 있다. VTM뿐만 아니라 현찰이나 마찬가지인 외국 유명 백화점의 선불카드.상품권카드 등도 안전한 선물리스트에 새로 올랐다.

러시아 세무당국은 아직 이 첨단 금융상품의 위력을 잘 몰라 세관통과시 신고의무 물품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다. 모스크바의 졸부들과 타락한 관리들이 이러한 상황을 놓칠 리 없다.

또 금융브로커들도 고수익이 보장되는 이러한 상품의 판매에 열심이어서 탈세가 보장되는 첨단 금융제품들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모스크바=김석환 특파원〈kshp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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