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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8개월 만에 밝혀진 ‘우라늄 농축’ 진실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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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라늄농축계획(UEP)을 둘러싼 북·미 간의 진실게임이 6년8개월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동안 미국과 북한은 UEP 문제를 놓고 “다 알고 있으니 자백하라”(미국)는 독촉과 “처음부터 없었던 일을 어떻게 자백하느냐”(북한)는 응수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북한은 13일자 외무성 성명으로 그동안의 부인(否認) 전술을 스스로 접었다.

UEP 문제는 2002년 10월 촉발된 2차 북핵 위기의 시발점이었다. 당시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사진) 미 국무부 차관보는 정보기관의 분석을 바탕으로 “북한이 무기급 우라늄을 농축하는 것은 합의 위반”이라고 추궁했다. 이에 반발한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로 동결했던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는 초강수로 맞섰다.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이 없는 ‘노 마크 찬스’에서 플루토늄을 만들어내고, 2006년 10월엔 첫 핵실험을 강행했다. UEP 압박을 플루토늄 추가 생산과 무기화의 빌미로 삼은 전략이었다.

미국은 증거를 들이대며 북한을 압박했다. 파키스탄의 핵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원심분리기 20여 개와 설계도를 북한에 넘겨준 사실도 드러났다. 2003년에는 원심분리기의 핵심 부품인 고강도 알루미늄관 200t 가운데 1차분을 싣고 독일에서 중국으로 향하던 화물선이 수에즈운하에서 적발돼 되돌아간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수입업체는 주소지가 베이징이었으나 대표자가 IAEA 본부가 있는 빈에 주재하며 원자력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북한의 전직 외교관이었다.

북한은 비슷한 무렵 러시아를 통해 알루미늄 관을 대량 수입하는 데 성공했다. 원심분리기 2500개가량을 만들 수 있는 양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우라늄 농축 공장을 가동해 핵무기의 재료를 뽑기에는 북한이 기술도, 물량도 부족한 것으로 정보기관은 판단했다. 애초 고농축우라늄(HEU)이라고 했던 용어가 어느 순간 ‘고(高)’자가 빠진 UEP로 바뀐 건 그런 연유에서다.

북한의 자승자박도 있었다. 2007년 11월 방북한 미 국무부의 성 김 과장 일행에게 북한은 “알루미늄 관은 미사일 부품용으로 수입한 것이지, UEP와는 무관하다”며 샘플 2개를 제공했다. 하지만 미국에 갖고 가 정밀 분석한 결과 이 샘플에서 우라늄 농축 관련 성분이 검출됐다. 정보 소식통은 “파키스탄에서 들여온 원심분리기와 같은 곳에 보관해두는 바람에 농축 흔적이 검출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이 미국의 검증 능력을 과소 평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여곡절 끝에 북·미는 지난해 4월 비밀양해각서를 교환하며 UEP 문제를 일시 봉합했다. 6자회담 2단계(영변 원자로 불능화 단계)에서는 UEP를 문제화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미국은 아직 무기급 농축 단계에 이르지 못한 UEP보다 추출량이 40㎏을 넘어선 플루토늄 문제가 더 시급한 과제라고 보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여 만에 북한은 “우라늄 농축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비밀리에 끊임없이 UEP를 추진해 왔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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