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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간송미술관 '진경산수화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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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스페인 작가 고야의 평전을 쓴 일본 소설가 홋타 요시에 (堀田善衛) 는 고야 시대의 유럽 부르봉 왕가를 다국적 기업에 비유했다. 여기저기 왕족과 정략결혼해 현지사장을 내보내듯 유럽을 주물렀다는 말이다.

고야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한 내용인데 그래서인지 18세기 유럽은 어디를 가나 문화가 비슷했다. 문화사에서는 이런 18세기 문화를 로코코문화라고 한다.

유럽이 로코코였을 때 한국은 진경 (眞景) 시대였다. 한때 우리의 18세기는 실학의 시대, 영.정조시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미술에서는 풍속의 시대라는 말도 썼다. 어느 것이나 시대의 문화적 특징을 나타낸 양식사적 명칭은 아니다.

진경시대라는 18세기의 문화사적인 이름이 비로소 등장한 것은 1989년이다. 간송미술관이 '진경산수화전' 전을 열 때 그곳 최완수 연구실장이 쓰면서 알려진 말이다.

시기적으로는 숙종이 재위에 오른 1675년부터 정조가 승하한 1800년까지 1백25년이 진경시대다.정치적으로 안정되고 사상적으로도 성리학의 한국적 철학화가 이루어지면서 높은 문화적 자부심 속에 한국적인 특색이 유감없이 발휘됐던 때가 진경시대라는 설명이다.

간송미술관 (관장 全瑛雨) 은 매년 봄.가을 마련하는 정기전의 올봄 전시로서 이들이 존재했기에 비로소 미술에서 진경시대가 가능했던 3명의 작가를 소개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31일까지 열리는 '진경시대 삼재 (三齋)' 전이다.

02 - 762 - 0442. 호 (號)에 같은 글자가 있어 일찍부터 삼재라고 묶어 불렸던 이들은 겸재 (謙齋) 정선 (鄭敾.1676~1759).관아재 (觀我齋) 조영석 (趙榮.1686~1761).현재 (玄齋) 심사정 (沈師正.1707~1769) 이다. 겸재는 회화사에 화성 (畵聖) 의 지위에 올라있는 천재작가.

그는 중국 북종화의 날카로운 필세 (筆勢) 와 남종화의 부드러운 먹맛을 조화시켜 부드러운면서도 강한 한국의 산하를 그려낸데 성공한 화가다. 그의 10년 후배인 관아재는 지금 옥인동 부근에서 겸재와 나란히 살며 그와 뜻을 함께 한 화가다.

그는 인물화에 주력하면서 한국식 옷차림의 인물을 등장시켜 나중에 풍속화의 시조가 됐다. 현재는 어릴 때 겸재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러나 그는 중국 남종화에서 그것을 풀어내 한국적인 남종화를 그렸던 화가다. 이번 전시에는 겸재 진경산수가 무르익던 시절의 '문암 (門岩)' '관동명승첩 (關東名勝帖)' 과 관아재 인물화 걸작인 '노승헐각 (老僧歇脚)' 그리고 현재가 중국필법으로 한국산을 그린 '소림모정 (疎林茅亭) 등 40여점이 전시중이다.

'조선고유문화 절정기에 꽃핀 걸작품' 을 한 곳에 모아 소개한다는 게 이번 전시의 기획의도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ygad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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