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파괴 심화, 멸종위기종 피난처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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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호 22면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의 북극곰. 종(種) 보전에 주력하는 대표적 동물원으로 평가받는 이곳의 동물은 자연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동물원의 야생동물은 처음엔 왕과 귀족의 수렵이나 사육 등 취미생활을 위한 존재였다. 좁은 창살 우리 속에 갇혀 왕족의 호기심을 채우고, 그들의 부와 명성을 증명하는 게 존재의 의미였다.

동물원의 진화

동물의 신세가 바뀐 건 근대 동물원의 효시라고 하는 런던동물원 개장(1829년) 때부터다. 단순히 동물을 전시하고 구경하는 것에서 벗어나 동물학과 동물생리학을 연구하는 과학과 교육의 목적이 보태졌다. 런던동물원은 우리 옆에 동물 먹이를 파는 매점을 뒀고, 나무를 타는 곰의 습성을 고려해 우리 가운데 높은 나무 기둥을 설치해 줬다. 이때도 쇠창살에 갇힌 야생동물의 신세에는 변화가 없었다.

야생동물이 좁은 우리에서 벗어나 자연환경과 유사한 곳에 방사되기 시작한 것은 독일의 하겐베크동물원 때부터다. 하겐베크동물원은 원래 야생동물의 잔혹한 밀렵과 거래를 부추긴 대표적인 곳이었다. 하겐베크는 철창 대신 해자(垓子)를 만들어 탁 트인 공간에 야생동물들을 살게 했다. 각 동물들은 정교하게 가려진 해자로 분리한 공간에서 생활했다. 쇠창살보다 나을지는 모르지만 해자 역시 동물의 생태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은 아니었다. 기존 동물원의 전시 방식에 싫증 난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다. 이 같은 방식은 당시 독일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20세기 많은 동물원의 모델이 됐다. 사람들이 자연상태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야생동물을 보는 것을 더 즐겼기 때문이다.

동물 사육 방식은 계속 진화했다. 1950년대부터 70년대 초까지는 동물을 대륙별로 구분해 전시하는 방법이 도입됐다. 70년대 이후에는 야생동물이 자란 기후별로 구분해 수용하는 ‘생태주의 전시’로까지 발전했다. 마치 원래 서식지를 통째로 동물원에 옮겨 놓은 모양이다. 동물원의 역할도 변했다. 19~20세기 초반까지가 관객의 흥미와 연구를 위한 단순 전시였다면, 최근 들어서는 종(種)을 보전하는 ‘보전센터’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미국 생태학자 재닌 베니어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80년대 중반부터 세계 동물원에 사는 포유류의 90%가 동물원에서 자체적으로 번식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동물원 김보숙 종보전팀장은 “환경파괴가 심각해지면서 야생 상태에서 사라진 동물이 많아졌다”며 “이제는 동물원이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의 종을 보전하는 ‘노아의 방주’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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