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동 청계천변 '판자촌'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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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마장동 청계천변에는 ‘판자촌’이 있다. 이곳에는 구멍가게도 있고 만화방도 있고 연탄가게도 있다. 조미료 ‘맛나’ 간판을 단 허름한 가게가 행인의 시선을 확 잡아 끈다. 만화방 문 왼쪽에는 20여년 전에 종적을 감춘 동그란 다이얼의 주황색 공중전화기가 턱하니 걸려 있다.

이곳은 한국 전쟁 직후 청계천변에 늘어서 있던 판자촌을 서울시가 재현해 놓은 곳으로 지난해 3월 개관했다. 개관 이후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찾는 사람도 다양하다. 당시를 추억하려는 나이 지긋한 노인은 물론 청계천을 산책하다 ‘신기하게 생긴’ 집을 보고 호기심에 찾아오는 20~30대, 엄마 아빠와 함께 찾은 어린이들도 눈에 많이 띈다.

판자촌에는 두 명의 ‘촌장’이 있다. 서울시설관리공단 위탁업체 직원이다. 김시만(62) 촌장은 “당시 판자촌에서 힘겹게 살다가 지금은 성공해서 잘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당시 판자촌 생활은 어땠을까?

“깨끗한 물이 흐르는 청계천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어요. 장마 때가 되면 흙탕물이 집안으로 넘치기 일쑤고 판잣집의 세간살이며 집에 붙어 있던 널판지가 떨어져 하류로 떠내려 갔죠. 하천의 바닥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이래요. 술집도 많았다고 합니다. 집도 지금 모형보다 작았다고 해요. 판자촌의 오물과 생활하수가 그대로 흘러 들어 청계천 물은 구정물이나 다름 없었대요. 주민들은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어깨에 물지게를 지고 멀리 떨어진 우물이나 공동 수돗가에 가서 물동이에 물을 담아 날라다 먹었죠. 당시 판자촌에 살았던 분들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인근의 벽산아파트와 용두동에서 살고 계신다고 해요.”김 촌장은 ‘당시 청계천에 살았던 분들한테 직접 들은’ 얘기라고 했다.

‘또리 만화방’에 들어서자 퀘퀘한 책 냄새로 코가 맵다. 더 뺄 것도 없는 단순한 디자인의 서가는 책꽂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구석에 놓여 있는 길다란 나무 의자에 앉아 지금은 더이상 볼 수 없는 70년대 만화책을 읽을 수 있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다. 의자 앞에는 함석으로 만든 배기통이 달린 연탄난로가 신주처럼 모셔져 있다.

‘청계연탄’ 가게 한켠에 마련된 창고에는 실물과 똑같이 만든 연탄 모형을 볼 수 있다. 관리하기 힘들어 모형을 만들었다고 한다. 연탄 구멍이 몇 개인지 확인해보는 것도 솔솔한 재미다. 연탄 가게 안에 들어가면 살림집이다. 세간살이라고는 짐가방 몇 개, 옷가지 몇 벌, 군용 모포가 전부다. 방 한복판에 놓여 있는 동그란 나무 밥상에는 양은 냄비와 양은 그릇이 있고 바닥에는 누런 색의 커다란 양은 주전자도 놓여 있다. 벽으로 시선을 돌리면 1970대 교복이 눈에 들어온다.

구멍가게 ‘광명상회’ 앞에는 부모님이 불량식품이라며 못 먹게 했던 군것질 거리들이 좌판 위에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상회 안을 둘러 보면 ‘1ℓ 유리병 콜라’와 ‘유엔표 성냥’도 진열돼 있다. 여기저기서 ‘맞아, 이런 것도 있었지. 나 이거 어렸을 때 먹었던 기억 나는데’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판자촌은 화재의 위험 때문에 판자촌 앞의 전신주 모형과 전시실에 총 3대의 폐쇄회로(CC)TV 카메라가 설치돼 24시간 작동하고 있다. 밤에는 공익근무요원 2명이 판자촌 사무실에서 야간 숙직을 서고 있다.

개장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매주 월요일은 휴장한다. 바로 옆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공개 프로포즈를 할 수 있는 ‘청혼의 벽’이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가는 방법: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2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타고 청계천문화관에서 내려 청계천문화관 맞은 편.

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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