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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논란부른 '의사살인죄'판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아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향해 활을 당긴 윌리엄 텔의 행위에 살인의 고의성이 있는가?" "보호자 퇴원요구와 의사의 허락만 있으면 단지 의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죽어도 되는가."

사법사상 최초로 의료사고와 관련해 의사에게 내려진 살인죄 판결에 대해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치료를 계속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큰 환자를 가족의 요구로 퇴원시켜 '고의적으로' 숨지게 했다는 것이 죄목이다.

물론 최종 유권해석은 사법부의 몫이며 이에 대해 판사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두명의 의사에게 과실치사가 아닌 살인죄란 중형을 선고했다.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법부의 판결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몰고올 파장은 의외로 간단치 않다. 우선 의사와 보호자 누구에게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장기입원 환자의 퇴원을 주장할 권리가 사라졌다.

단지 0.1%의 사망확률만 있어도 퇴원결정이 미뤄질 것이다. 그렇다고 선진국처럼 빈곤층의 장기입원에 따른 비용부담과 병실부족에 관한 복지제도가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환자 가족과 의료계는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과중한 비용부담과 입원적체로 인해 또다른 생명에게 적시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번민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의성' 에 관한 문제다.

퇴원시키면 죽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도 퇴원을 허락한 것은 고의라는 것이 재판부의 해석이다.

하지만 다른 의사가 당시와 똑같은 상황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 역시 대부분 퇴원결정란에 사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 의료계의 현실이다.이번 판결대로라면 국내 의사들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 모두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퇴원결정을 포함한 일체의 의료행위는 속성상 일정부분 위험부담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윌리엄 텔의 사과다. 이제 의사들은 아무도 화살을 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홍혜걸 전문기자〈es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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