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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 극지로 … 한국, 과학 강국으로 거듭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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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03년 12월 7일 남극 킹조지섬 세종과학기지. 1년간 파견근무를 마친 연구대원 24명을 귀환시키기 위해 칠레기지로 태워주고 돌아오던 고무보트 세종 1호가 뒤집혔다. 세종 1호를 구조하러 간 세종 2호도 높은 파도에 뒤집히면서 전재규(당시 27세) 대원이 숨졌다. 대원들은 “쇄빙선 한 척만 있었어도…”라며 통곡했다.

순수 국내 기술로 건조된 우리나라 최초 쇄빙선 아라온호의 진수식이 11일 부산 영도에서 열렸다. 한진중공업이 만든 아라온호는 남극 주변 등 얼어 있는 바다에서 독자적으로 항해할 수 있는 6950t급 배다. [부산=송봉근 기자]


2009년 6월 11일 부산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뱃머리가 날카롭게 생긴 이상한 배 한 척의 진수식이 열렸다. 국내에서 처음 건조된 쇄빙선 ‘아라온’호. 고 전재규 대원이 속했던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가 9월께 인수해 2010년 남극 세종기지 탐사활동에 투입할 배다.

아라온호는 6년의 세월로 떨어진 두 장면을 잇는다. 전재규 대원의 죽음을 통해 열악한 남극 탐사활동의 현실이 알려진 뒤 정부가 1040억원으로 2004년 쇄빙선 건조에 나선 지 5년 만에 국내 기술로 건조했다. 바다를 뜻하는 옛 우리말 ‘아라’에 모두라는 ‘온’을 합성한 배 이름은 모든 바다를 누비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6950t(111X19X9.9m)급의 아라온호는 얼음으로 뒤덮인 영하 30도의 혹한에서도 운항과 연구활동이 가능한 첨단 장치를 갖췄다. 6800마력짜리 엔진 두 개가 같은 급 선박의 3∼4배에 달하는 출력을 내뿜으며 시속 4노트의 속도로 두께 1m의 얼음을 깨며 항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선수 쪽은 얼음을 깰 수 있는 날카로운 ‘아이스 나이프’를 달았다. 철판 두께도 39.5㎜로 국내 선박으로는 가장 두꺼운 독도함 20㎜의 두 배쯤 된다. 배 표면에는 돌덩이처럼 단단해 잘 긁히지 않는 특수도료를 칠했다.

이 배에는 100여 종의 첨단 실험장비가 실려 있다. 가장 비싼 장비는 여러 각도의 음파를 쏘아 바다 밑의 영상을 3차원으로 재생하는 ‘다중채널 음파 탐지기’로 27억원짜리다.

지금까지 남극기지를 갖고 있는 20개국 가운데 한국과 폴란드만 쇄빙선이 없어 쇄빙선을 가진 나라로부터 하루에 8000만원을 주고 빌려 써 왔다. 극지연구소 남상헌 쇄빙선 운영팀장은 “한국의 쇄빙선 진수 소식이 알려지면서 미국·영국 등 선진국들이 공동연구를 제안해 올 정도로 우리의 위상이 높아졌다. 셋방살이를 면한 기분이다”고 말했다.

부산=김상진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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