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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제3장 함부로 쏜 화살 "형님. 시방 하신 말 진정입니껴?" "농담할 일이 따로 있지. 시방 자네한테 흰소리 늘어놓을 땐가?" "아이고, 내 팔자야. "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길가에 내놓은 살평상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낮동안 북새통을 이루었던 선착장의 어물난전은 황량하게 비어 있었다. 밤갈매기 몇 마리가 부두에 정박시킨 채낚기 어선 돛대 위로 끼욱거리며 날고 있었다.

변씨는 담배에 불을 댕겨 봉환에게 건네주었다.고개를 떨구고 앉은 봉환의 모습이 측은해 보였다.

치마만 둘렀다 하면, 밉고 추한 것은 물론 나이가 많고 적음조차 가리는 법이 없이 잠자리부터 트고 보자는 식이었던 봉환의 탐락적 (貪樂的) 인 삶이 만들어준 애꿎은 결과였다.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변씨는 자제하고 있었다.

승희와 동거를 시작하고부터 여자를 탐하는 일은 삼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나열한다면, 해결의 실마리는커녕 봉환의 심기만 뒤틀리게 만들 뿐이었다. 변씨는 그가 와락 심술을 부리고 일어서서 몽둥이를 찾아 들고 식당으로 들이닥칠까봐 조마조마했다.

"울화통이 끓어오르는 자네의 심사를 모른 것은 아니지만, 목구멍에서 주먹이 삐죽삐죽 기어나온다 할지라도 조용하게 해결 방안을 찾는 게 상책이야. 섣불리 북새통을 피웠다간 승희는 자네와의 관계를 가차없이 청산하려 들 게야. 요사이 줏대있다는 여자들은 찰떡 궁합으로 금실 좋게 살다가도 자존심에 상처 받으면, 결혼이고 좆이고 기다렸다는 듯이 그걸로 끝장내버리는 거 자네도 알지? 한선생이 바로 그런 여자와 만나서 슬하에 소생까지 두었지만,가차없이 소박당해서 주문진까지 쫓겨온 남자의 표본이 아닌가.

어디 젊은 여자들뿐인가.

요즈음에 이르러서는 기침할 때마다 주둥이에서 틀니가 쑥쑥 빠져나와서 쳐다만봐도 속이 느글느글한 늙은 여자들도 무슨 배짱으로 그러는지는 몰라도 사내가 한 번 삐끗하면 당장 이혼장에 도장 찍으라고 거품을 빼물고 넉장거리를 한다는 거 자네도 알지? 자네가 몽둥이를 쳐들고 가게로 쳐들어가는 것은 좋은데, 그렇게 되면 자네가 지금껏 계집질에만 몰두하고 다녔던 추잡스런 일들이 백일하에 탄로난다는 것도 함께 각오해야지.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 횡액을 무사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은 아니야. 아직까지는 승희가 양과부의 속창에 뭐가 들어 앉아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야. 그래서 자네가 울화를 삭이고 처신만 잘하면, 승희는 물론이고 이웃에 소문 하나 없이 양과부를 따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형님 말씀이 황금 같은 말씀입니다만 나는 지금 살점이 부들부들 떨려서 갈피를 못잡겠습니더. 그런데 그 여자가 승희한테 지 본색을 털어놓지 않는지 그것부터 미심쩍네요. " "승희한테 마지막까지 숨길 테지. 왜냐하면 양과부의 일차적 목적 달성은 영동식당에 파출부로 기거하면서 자넬 낚아챌 기회를 엿보는 것이 아니겠나. 자기 속창까지 뒤집어 보이면, 승희가 가만 있겠나? 자네가 아니더라도 승희 먼저 양과부를 쫓아내겠지. 그렇기 때문에 자네가 며칠 동안 가게에 얼굴을 디밀지 않는다 할지라도 양과부가 속으로 안달은 하겠지만, 지 본색을 승희한테 툭 털어놓지는 못할 것이야. 그 여자 생긴 것 봐. 저승사자처럼 음험하고 스산하게 생겼지 않나?" 변씨가 묵호댁의 생긴 모색을 일컬어 추물이라고 비난투로 말하자, 봉환은 그나마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는지 툭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양과부가 미색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더만, 형님 말처럼 저승에서 온 물귀신처럼 추물은 아이시더. 형님이 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렇지 같이 하룻밤을 자보면, 그게 아이시더. " "예끼, 이 사람 아직 올곧은 정신 차리려면 한참 걸리겠구만. "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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