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회계사 한모(40)씨는 요즘 틈이 날 때마다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다. 한씨는 “학군이 좋은 도곡동 도곡렉슬의 경우 109㎡형 아파트 전셋값이 5억원이나 하는데 그나마 바로 이사할 수 있는 전셋집이 없더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권(강남·서초·송파구) 전세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서울의 주택시장이 전반적으로 조용한 가운데 유독 강남권만 이상하리만큼 움직임이 크다. 한국부동산정보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서울 평균 전셋값은 1.2% 오른 데 비해 강남권 전셋값은 4.2% 뛰었다. 새 아파트는 상승폭이 이보다 훨씬 크다. 지난해 말 2억원대 초반이었던 삼성동 힐스테이트 109㎡형은 4억원으로 급등했다. 잠실 일대 새 아파트도 연초보다 50%가량 뛰었다. 게다가 전세물건 구하기도 무척 어렵다.
이런 판에 신규 공급은 거의 끊겼다. 올해 강남에서 집들이하는 아파트는 8곳 3853가구가 전부인데 다음 달 입주하는 2444가구의 반포래미안 등 대부분 단지가 이미 세입자 구하기를 끝냈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연구실장은 “재건축 규제로 일관한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후유증이 심각한 수급 불일치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정부 때 강남권 재건축 사업이 거의 중단되면서 지금 후유증을 앓는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그동안 강남 대체 주거지를 넉넉히 마련하지 못한 데다, 분양가상한제 시행 등으로 새 아파트 공급이 적었던 것도 강남권 전세 수요가 늘어난 원인으로 보고 있다. 피데스개발 김승배 사장은 “분양시장으로 빠져나가야 할 수요가 인기 지역 전세시장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착공을 앞둔 6600가구의 가락시영 등 대형 재건축 단지의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강남권 전세 수요는 급증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관건은 다른 지역에서 강남 수요를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하반기부터는 판교신도시와 용인흥덕지구에서 1만2000여 가구가 새로 입주한다.
일부에서는 강남권 전셋값이 더 오르면 매매 값도 따라 올라갈 것이란 우려도 한다. 실제 2001년 5월 매매 값 대비 전셋값 비율이 6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강남권 아파트값은 큰 폭으로 뛰었다.
아파트 공급은 금방 늘릴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강남권 전세 불안을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강남권 전세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공급량 확대 못지않게 지속적인 공급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고성수 교수는 “강남권의 주된 공급원인 재건축 등 도심 개발사업의 사업장별 속도를 조절해 공급과잉과 부족이 반복되지 않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