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강남 전셋값, 사연 있는 고공비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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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공인회계사 한모(40)씨는 요즘 틈이 날 때마다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다. 한씨는 “학군이 좋은 도곡동 도곡렉슬의 경우 109㎡형 아파트 전셋값이 5억원이나 하는데 그나마 바로 이사할 수 있는 전셋집이 없더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권(강남·서초·송파구) 전세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서울의 주택시장이 전반적으로 조용한 가운데 유독 강남권만 이상하리만큼 움직임이 크다. 한국부동산정보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서울 평균 전셋값은 1.2% 오른 데 비해 강남권 전셋값은 4.2% 뛰었다. 새 아파트는 상승폭이 이보다 훨씬 크다. 지난해 말 2억원대 초반이었던 삼성동 힐스테이트 109㎡형은 4억원으로 급등했다. 잠실 일대 새 아파트도 연초보다 50%가량 뛰었다. 게다가 전세물건 구하기도 무척 어렵다.

◆수급불일치는 재건축 규제의 부작용=강남권 전세시장이 불안한 것은 수급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공급이 들쑥날쑥 이뤄져 시장불안을 야기하는 것이다. 송파구 잠실과 강남구 도곡동 등지서 지난해 입주한 아파트는 2만여 가구.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전세물건이 넘치면서 시장이 안정세를 보였다. 그러다 올 들어 수요가 몰리면서 갑자기 전세시장이 불안해졌다. 잠실 엘스 등 일대 아파트 109㎡형 전셋값이 석 달 새 1억원씩 오르는 이상 현상이 이때 나타났다. 잠실동 두리공인 박수현 사장은 “강남권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이 전세물건을 다 챙기면서 올봄에는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런 판에 신규 공급은 거의 끊겼다. 올해 강남에서 집들이하는 아파트는 8곳 3853가구가 전부인데 다음 달 입주하는 2444가구의 반포래미안 등 대부분 단지가 이미 세입자 구하기를 끝냈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연구실장은 “재건축 규제로 일관한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후유증이 심각한 수급 불일치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정부 때 강남권 재건축 사업이 거의 중단되면서 지금 후유증을 앓는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그동안 강남 대체 주거지를 넉넉히 마련하지 못한 데다, 분양가상한제 시행 등으로 새 아파트 공급이 적었던 것도 강남권 전세 수요가 늘어난 원인으로 보고 있다. 피데스개발 김승배 사장은 “분양시장으로 빠져나가야 할 수요가 인기 지역 전세시장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강남권에서 입주할 아파트는 당분간 없다. 내년부터 2011년까지 강남권에서 집들이할 아파트는 2400여 가구에 불과해 공급부족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압구정동 초고층 재건축, 은마아파트 재건축, 송파신도시 조성 등 신규 공급 재료가 있긴 하지만 5년 이상 걸리는 장기사업이어서 당장 시장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반면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착공을 앞둔 6600가구의 가락시영 등 대형 재건축 단지의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강남권 전세 수요는 급증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관건은 다른 지역에서 강남 수요를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하반기부터는 판교신도시와 용인흥덕지구에서 1만2000여 가구가 새로 입주한다.

일부에서는 강남권 전셋값이 더 오르면 매매 값도 따라 올라갈 것이란 우려도 한다. 실제 2001년 5월 매매 값 대비 전셋값 비율이 6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강남권 아파트값은 큰 폭으로 뛰었다.

아파트 공급은 금방 늘릴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강남권 전세 불안을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강남권 전세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공급량 확대 못지않게 지속적인 공급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고성수 교수는 “강남권의 주된 공급원인 재건축 등 도심 개발사업의 사업장별 속도를 조절해 공급과잉과 부족이 반복되지 않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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