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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단독입수 외환위기 YS 답변서 전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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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영삼 전대통령은 지난 2일 외환위기와 관련한 검찰 답변서를 통해 검찰 질문에 대한 답변과는 별도로 전 정권의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자신이 보고 느끼고 겪은 외환위기의 원인.배경 등을 기술했다. 그는 외환위기엔 현 여권의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했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는 표적수사라고 주장하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 요약.

- 대통령의 책임.

"재임기간 5년동안 항상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오늘날 국가경제가 심히 어려워지고 국제통화기금 (IMF) 의 금융지원을 받는 사정에까지 이르게 돼 국가의 위신이 떨어지고 국민의 생활이 고통스러워진 결과에 대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그 책임을 통감하며, 죄송한 마음 금할 수 없다."

- 관계자에 대한 사법적 책임 규명.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책임을 규명함에 있어 만약 형사책임을 져야 할 사유가 있다면 당연히 사실 조사와 증거 조사를 거쳐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언론 보도에서 거론되거나 질문서에서 쟁점으로 삼고 있는 내용으로 보아 짐작되는 강경식 전부총리나 김인호 전경제수석비서관 두 사람을 표적으로 해 대통령에 대한 직무상의 보고를 고의로 유기, 직무유기죄를 범했다는 혐의사실을 전제로 한 이번 수사는 앞으로 조사결과에 따라 분명히 밝혀지겠지만 그 직무상 보고의 대상자인 동시에 그들에 대한 지휘 명령권자였던 대통령인 본인이 직접 듣고 보고 겪은 사실에 입각하면 그러한 혐의사실이 인정될만한 일은 추호도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정책의 방법이나 시기의 선택, 정책집행의 기술이나 효과 또는 잘잘못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문제를 가지고는 사법처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우리나라 경제악화 및 외환위기의 원인.

"우리나라의 경제가 악화된 원인에는 나를 비롯한 경제담당 공무원들의 사실 판단이나 운용능력 또는 정치지도력에 문제가 있었다는 비판을 잘 알고 있다.

(1) 만성적 경상수지의 적자현상 누적. 우리 경제는 90년대 초반 이래 각 기업의 고임금.고금리.고지가.고물류비용 등 요소비용의 지속적 상승으로 국제경쟁력이 약화됐고 과소비 풍조에다 반도체 등의 수출가격 급락 등 교역조건이 크게 악화돼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돼왔다.

(2) 대기업들의 구조적 결함과 연쇄 도산.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차입위주 성장은 경제위기때 대처능력의 기민성을 상실하게 되며 부실화를 가속시켰다.

한보.기아사태 이후 대기업들의 연이은 부도로 대외적 신인도가 크게 떨어지게 됐다.

이러한 대기업들의 구조적 결함을 개선하기 위해 본인은 재직중 공정거래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하고 계열 기업간의 지급보증을 자기자본의 1백% 이내로 제한하는 한편 결합재무제표 제도의 도입을 추진했으나 재계의 반대 등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IMF사태 이후인 97년 12월에야 국회를 통과하게 됐다.

(3) 금융기관의 부실화와 금융감독기능의 제도적 장치 결여. 대기업의 부실화는 금융기관의 부실화를 가져왔고, 이를 중앙은행과 감독기구들이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해 대외 신인도마저 떨어뜨리는 결과가 됐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본인은 금융감독기능 강화 등을 위한 금융감독체제 개편을 95, 97년 두차례에 걸쳐 추진했으나 정부에서 마련한 금융개혁방안은 관련기관간의 이해상충으로 국회는 끝내 정기국회 폐회시까지 법안에 대한 표결도 안한 채 폐기시켰으며, IMF사태를 맞고 나서야 97년 12월29일 국회를 통과하게 됐다.

(4) 노동시장의 경직성. 고용조정제도를 도입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는 등 구조조정을 위해 본인이 대통령 직속의 노사개혁위원회를 설치, 장기간 연구.검토해 노동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당시 야당의 원천적 심의 봉쇄로 고용조정제도를 제외한 법안의 변칙적 통과로 인해 97년초 노동법 파동이 일어나 그 시행이 유보돼왔는데 그것 역시 IMF사태 이후인 올 2월에야 노사정 대타협에 의해 그 시행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 문제는 노사간의 이해 대립 등으로 아직까지 사실상 완전 해결됐다고 볼 수 없는 실정이다.

(5) 투명성 결여. 정부는 기업.금융기관의 투명성 확보와 책임경영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일련의 개혁조치로서 금융개혁법안을 지난해 8월 국회에 제출했으나 IMF사태가 오고 대선이 끝난 다음에야 겨우 국회를 통과했다.

(6) 대외적 요인. 태국.인도네시아 등의 통화위기 및 홍콩의 증권시세 폭락이 이곳에 투자한 국내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타격은 물론 일본의 채권회수로 이어지면서 사태악화를 촉발했다.

더불어 해외 언론의 우리 외환사정에 대한 왜곡.과장 보도가 외국자금의 한국 일탈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 반성과 교훈.

(1) 구조 개혁의 차질. 우리가 IMF관리 경제를 맞게 된 근본 원인은 우리 스스로의 구조 개혁 노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데 있다.

지난 수년동안 추구한 '변화와 개혁' 은 충분한 내실을 기하지 못했고, 변화에 걸맞은 제도를 구축하기 위한 국정 전반에 걸친 구조 개혁이 완성되지 못했다.

(2) 문제해결 능력에 대한 불신과 신인도 하락. 개발독재시절을 지나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오늘날 민주적 방식에 의한 구조개혁을 이룰 능력이 있는가가 당면한 경제난국을 해결하는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3) 맺는 말. 경제분야에 있어 좀더 면밀히 분석하고 장래를 더욱 정확하게 예측해 보다 실효성있는 정책을 펴지 못한 점에 아쉬움을 느끼며 제반 경제구조 개혁을 위해 좀더 과감한 추진과 정치권에 대한 설득 및 국민에 대한 의식계도 등에 미흡했던 점은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박승희 기자

〈pmas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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