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캠퍼스에 아담한 한옥, 학생들이 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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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짓는 과정이 이렇게 섬세한 작업인 줄 몰랐죠. 이 수업을 들으며 사람의 삶과 집을 짓는 재료, 그리고 짓는 방식을 하나로 잇는 연결 고리를 한옥에서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수범·32·박사과정)

‘한국건축사연구방법론’ 수업의 과정으로 서울대 캠퍼스에 한옥을 완성한 서울대 건축학과 전봉희 교수(앞줄 맨왼쪽)와 학생·미장 전문가들. 창호는 미장 작업을 위해 떼어낸 상태다. 이 한옥은 12일 마루에 콩기름 먹이기 작업을 끝으로 완공되며 13일 집들이를 할 예정이다. [김도훈 인턴 기자]


“저는 경주가 고향이에요. 야트막한 기와지붕을 당연하게 보고 자랐죠. 지금도 경주에 내려가면 지붕 처마선이 보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져요. 꼭 듣고 싶었던 수업이었어요.”(옥수련·25·석사과정)

서울대 건축학과 학생들이 한옥을 지으며 느낀 소감이다. 전봉희 교수(46)가 지도하는 ‘한국건축사연구방법론’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실습으로 지은 것이다. 지난해 가을학기부터 이번 학기까지 두 학기에 걸쳐서 두 칸짜리(약 4평·14.58㎡) 집을 완성했는데 학생들의 반응은 감격에 가깝다. 자신들이 나무를 깍고 다듬고 조립했던 이들은 상량식 때 눈물까지 흘렸을 정도다. 마루 한 칸, 방 한 칸인 이 집을 짓는 과정이 그들에게는 단순한 실습을 넘어 집(한옥)에 대한 ‘생각’을 짓는 또하나의 과정이었다.

흙과 모래로 벽을 친 방의 내부 벽. 벽 중간에는 장식 효과를 위해 일부러 휜 나무를 썼다.

◆“이론만으로는 갈증 느꼈다”= 한옥이 들어선 자리는 관악 캠퍼스 안 북쪽의 ‘공대 폭포’ 아래다. 잔디밭에 터를 닦는 일로 시작해 지난 두 학기 동안 이어진 한옥짓기엔 모두 32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첫 학기엔 대학원생만 참여했지만 이번 학기엔 학부생도 함께 했다. 전 교수는 학생들과 ‘공사’에 나선 이유에 대해 “그동안 한옥 관련 실습은 ‘지붕틀 제작’현장을 견학하는 정도였다”며 “이론 수업만으로는 항상 부족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역시나 이론과 실습은 달랐다. 일주일에 하루를 온전히 바쳐 한 학기 15주면 완공될 줄 알았지만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 두 학기로 늘어났다. ‘설계’와 ‘시공’이 분리되지 않는 전통건축에서 ‘현장 초보’인 교수와 학생들 솜씨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부지를 놓고 학교 기획실 측과 조율도 필요해 한 학기 만에 조립을 해체하고 올 3월에 집을 옮기는 ‘수난’도 겪었다.

이들이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집은 소박한 크기에 온돌이 빠진 구조이지만 이른바 ‘럭셔리 한옥’이다. 모델이 된 건물이 창덕궁 폄우사(효명세자가 독서하던 곳)로 궁궐 건축의 정통 기법을 충실하게 따랐다. 뿐만 아니다. 이 바닥에서 첫 손 꼽히는 명장들이 강의와 현장 실습을 지도했다. 이재호 도편수(우두머리 목수), 여영대 부편수, 이근복 번와장(기와 장인), 심용식 창호장, 김진욱 미장, 정길영 석장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구석구석에 스며있다.

◆한옥이 전하는 메시지 ‘주거 선택권’=학생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과정으로 ‘상량식’과 세 차례에 걸친 ‘벽치기’(벽을 채우는 과정)를 꼽았다. ‘이론’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었던 것을 얻은 소중한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이번 수업을 통해 한옥 짓기의 전 공정을 120개로 세분화하고 정리해봤다”며 “이 한옥이 신한옥 보급을 위한 연구에 자료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 교수는 또 “아파트가 점령해버린 한국은 엄밀한 의미에서 주거 선택권이 거의 없는 상태”라며 “한옥의 기능성과 아름다움을 미래지향적으로 보고 주거 형태의 다양한 가능성을 돌아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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