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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경영 세계화로 먹을거리 주권 지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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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우리 농업에는 세 가지의 역설이 있다. 첫 번째가 농학을 전공하는 인재와 대학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농산업 분야에 취업하는 농학 전공자는 드물다는 것이다. 농업 과학은 이미 생명과 환경을 중심으로 세계화되었는데, 농산업 현장은 아직도 뜰 안에서 김매고 외양간 치우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앞선 학문을 공부해도 세계를 상대로 꿈을 펼칠 마땅한 기업이 드물어 영세 농업인이 될 수밖에 없으니 인재들이 일생을 투자하기 어렵다. 국제화된 대기업 규모의 훌륭한 일자리가 이 부문에서 생기지 않으면 인재를 유치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둘째는 정부는 매년 10조원 안팎의 돈을 농민을 위해 쓰고 있는데도 고마워하는 농민은 별로 없는 것이다. 정부가 투자한 돈은 국내 기반시설을 갖추는 데 주로 쓰이고, 농민에게 지원되는 것은 대부분 융자다. 지원을 못 받으면 섭섭하지만 융자를 받더라도 농산업은 투자 회임기간이 길어 초기에는 빚이 될 수밖에 없다. 지원해준 고마움이 금세 원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정부가 농민에게 제공한 융자가 대략 26조원인데 이 기간 중 9조원이던 농가 부채가 35조원으로 늘어난 것을 보면 농업 융자는 대부분 부채로 굳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 농민을 지원하기보다는 농산업 분야 대기업을 육성하는 데 이런 역량이 집중되고, 농민은 기업에 참여해 땀의 대가를 받는 선순환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시민은 힘들고 지칠 때 시골에 농사지으러 가겠다고 하지만 농민은 빈집을 남겨 두고 도시로 떠나는 역설이다. 일자리도 마땅치 않고 아이들 교육도 문제니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날 수밖에 없다.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으니 운신이 어려운 노인은 고향을 찾아야 할 나이에 고향을 떠나야 하는 형편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뛰어놀고도 진학할 수 있고, 노인이 젊은이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지역사회가 조성되도록 제도와 시설이 정비되어야 한다.

정부는 올해에도 농어촌 복지·교육·지역개발 등에 5조1600억원가량을 투자 또는 융자해 농어촌의 삶의 질을 향상하겠다고 한다. 농어가가 127만 가구 정도이니 가구당 매년 400만원의 혜택을 보게 되는 셈이다. 적어도 예산을 풀어 돈을 나누어 주는 것보다는 나은 정책을 써야 할 텐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각종 직불금이나 보조금처럼 실제로 나누어 주는 사업이 많고, 쌀소득 보전 직불제처럼 전달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목표를 달성한들 농촌이 겨우 도시 수준에 근접하게 되는 정도라는 것도 안타깝다.

농촌과 농민을 지원하는 이유 중 하나는 먹을거리 주권의 확보에 있다. 그러나 이미 국내에서의 생산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수입은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먹을거리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생산지와 공급처에 우리의 시선이 머무를 수 있도록 농업 영토를 세계로 확장해야 한다. 우선 힘들더라도 농업 부문의 역량을 기업에 집중해 뛰어난 농업 전공자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하고, 단순한 생산 중심에서 지식산업까지 농산업의 분야를 확장하며,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농업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네덜란드는 좁은 영토에서 꽃을 가꾸기보다는 우수한 종자 기술과 시장을 좌우하는 자본으로 세계 꽃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농업이 주력산업인 뉴질랜드는 농업 보조금 제도를 개선하는 농업혁명을 통해 농업 강국으로 떠올랐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한국 농업도 네덜란드나 뉴질랜드처럼 성장동력 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정재 서울대 교수·지역시스템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