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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이력서 냈다고 저절로 생기진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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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인생 2모작 프로젝트 도전하세요 ‘일·만·나’ 캠페인을 통해 청년구직 활동을 돕는 중앙일보와 인크루트가 이번엔 중장년층을 위한 ‘인생 2모작 프로젝트’를 합니다. 성공사례를 소개하고 재취업 컨설팅을 해드립니다. 또 16일부터 청년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매주 화요일 중앙일보 본사에서 ‘취업 선배와의 대화’를 엽니다.


김용훈(48·가명)씨는 15년간 다닌 인천의 선반기계 제조업체가 어려워지면서 지난해 실직했다. 연봉 4000만원의 수입이 끊겼고 생계가 막막해졌다. 한 달에 100만원 남짓한 실업급여와 얼마 안 되는 퇴직금으로 생활하려니 빠듯했다.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교육비를 비롯해 식비·의류비 등 줄이지 않은 게 없다. 그는 올 초 대한상공회의소 인력개발원에 들어가 선반 관련 고급기술을 배우고 있다. 처음엔 무조건 빨리 직장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을 뽑는 곳이 거의 없는 데다 고급기술을 익히지 않으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없을 것 같아 우선 재교육을 받기로 한 것이다. 그는 “6개월 교육 과정이 끝난 뒤에도 취직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앞날이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직 공포가 중산층을 위협하고 있다. 생계 걱정, 가족에 대한 미안함, 절망감과 두려움, 우울증으로 인한 건강 손상….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박사는 “최근 통계를 보면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중산층이 얇아지고 있는데, 실직 가장 대부분이 이 계층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모두 절망에 빠진 것은 아니다. 자신의 기술을 살려 제2의 인생을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07년 포스코에서 퇴직한 엄재명(58)씨는 10개월을 쉬다가 지난해 한 중소기업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포스코건설에 납품하는 건설자재 품질을 검사하는 용역회사에서 검사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연봉은 전 직장의 절반 수준. 하지만 지난 30년간 기계와 씨름하며 쌓은 전문지식을 활용할 수 있어 만족한다. 그는 “건강과 능력만 허락한다면 앞으로 10년쯤은 더 다닐 수 있을 것 같다”며 “연봉에만 얽매이지 말고 눈높이를 낮추면 길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석철(38·가명)씨는 두 차례 실직 경험을 했다. 실직 1년이 지난 뒤엔 퇴직금의 80%를 써버렸다. 보험도 해약했다. 노사공동재취업지원센터로 출퇴근하면서 점심은 굶었다. ‘남들처럼 먹을 것 다 먹으면 되겠느냐’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회사가 어려워져 퇴사한 경험 때문에 이번엔 기업조사를 철저히 했다. 관심 있는 기업을 재무상태와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A, B, C 등급으로 순위를 매겼다. 그는 지난달 초 주차관제시스템 업체에 국내영업부 차장으로 입사했다. 그는 “이력서를 전달하러 회사 문 앞까지 갔다가 용기가 안 나서 그냥 돌아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며 “이력서 넣어 놓고 마냥 기다리면 일자리는 절대로 제 발로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취업 성공을 위해서는 직업상담과 일자리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박사는 “단순히 실업급여만 줄 게 아니라 퇴직 이후 진로를 상담하고 일자리도 연결시켜주는 서비스를 퇴직자들은 더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포스코·KT 같은 대기업이 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전직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좋은 예다. 한국고용정보원 노경란 박사는 “중년층 재취업은 주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지는데, 이보다는 구직 경로를 체계화하고 직업 컨설팅을 확대하면 재취업 성공률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준 박사는 “구직자들이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으로 가도록 유도해야 일자리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현영·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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