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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걸어도 걸어도’ 개봉 앞두고 내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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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극장 문을 나설 때 각자의 가족에 대해서 돌아보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걸어도 걸어도’는 병으로 죽은 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을 담은 자전적 영화다. [김경빈 기자]

몇 년 전 투병 끝에 치매 증세를 보이던 어머니가 죽었다. 어머니가 죽기 전 어느 날 병원에 들른 아들은 외출 준비를 하는 어머니를 목격한다. 뭘 하느냐 묻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밖에 아들이 자동차를 갖고 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외아들이었던 그에게는 운전면허가 없었다. 치매 증세가 나타나기 전 입버릇처럼 “아들이 태워주는 차를 타고 싶다”고 말하던 어머니였다. 아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아들이 태워주는 차를 얼마나 타고 싶었으면 치매가 온 지금까지도 그 말을 되풀이할까. 8일 내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47) 감독이 영화 ‘걸어도 걸어도’를 만들게 된 출발점이었다.

◆가족의 재발견=가족만큼 서로에게 이뤄지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는, 회한의 존재가 또 있을까. 문제는 알면서도 있을 땐 잘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가족은 있을 땐 귀찮고 사라지면 (왜 잘 해주지 못했을까) 후회스러운 존재인 것 같아요. 저도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한나절만 같이 있어도 지쳤죠. (잔소리 때문에) 시끄럽고 귀찮고….(웃음)” ‘걸어도 걸어도’에서 요코하마 고향 집을 찾은 아들 료타(아베 히로시)도 고레에다 감독처럼 ‘이 세상 모든 어리석은 자식’중 한 명이다. 끝내 아버지(하라다 요시오)와 축구장에 다시 가지 못하며, 어머니(키키 기린)가 타고 싶어하던 차도 태워주지 못한다.

특별히 과격한 목소리나 쇼킹한 표현방식을 택하지 않았음에도 가족의 의미에 대해 제각기 진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는 점에서 ‘걸어도 걸어도’는 탁월한 가족영화다. 소년을 구하고 대신 죽은 료타의 형 12주기를 맞아 모인 가족이 보내는 1박2일이 흘러가는 모습은 소리없는 가운데 뭔가 벌어지는, ‘정중동(靜中動)의 그것이다. ‘자전적 영화’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걸어도 걸어도’에는 고레에다 감독이 겪었던 일상적 가족의 모습이 곳곳에 녹아 있다. 동시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 모두 떠올릴 수 있는 가족의 정경이기도 하다.

“제 아버지도 영화 속 아버지처럼 살가움과는 거리가 멀었죠. 제가 어렸을 적에 야구를 좋아했는데, 그 탓에 오랜만에 집에 가면 아버지한테 야구 얘기만 죽어라 들어야 했어요. 사실 이젠 야구 안 좋아하는데 그건 모르시고.(웃음) .”

◆송강호의 재발견=동네 의사로 평생 일한 영화 속 아버지는 이 작품의 주요 웃음 유발인자다. ‘내가 평생 일해서 지은 집인데 왜 할머니 집이라고 하느냐’고 앙탈(?)부리는 대목은 무뚝뚝해보이기만 하던 인상을 일거에 무너뜨린다. “일본에서 지난해 개봉했을 때도 관객들이 아버지가 나오면 심하게 웃음을 터뜨렸어요. 이제는 잃어버린 가장의 위엄을 그렇게라도 지키려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나 봅니다.”

가족은 핏줄은 통하지만 일단 성장해 제 갈길을 가면 그야말로 ‘동상이몽’의 집단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그는 기어이 짚고 넘어간다. 영화 막바지 료타 가족이 버스를 타고 떠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이제 설에나 오겠군’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버스에 탄 아들은 아내한테 ‘이번에 왔으니 설은 넘어가자’ ‘다음에 오면 이번처럼 자고 가지는 말자’고 말한다. “제가 생각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잔혹한 장면이죠. 아들한테 무신경한 것처럼 보이던 아버지는 사실은 아들의 방문을 몹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들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하니깐요.”

‘주연으로 쓰고 싶은 한국 배우’를 물었다. “송강호씨죠. ‘괴물’에서 약간 바보스러운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번에 칸에서 만나보니 스마트하고 섹시하고 매력적인 배우던데요. 고레에다 감독이 같이 영화 찍고 싶어한다고 꼭 써주세요.(웃음)”  

기선민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고레에다 히로카즈=1962년생. 국내에 ‘원더풀 라이프’(1998) ‘아무도 모른다’(2004) ‘하나’(2006) 등으로 고정 팬을 거느리고 있는 일본의 대표 현역 감독이다. 일본 현대사회의 폐부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장기다. 어머니가 즐겨 부르던 유행가 ‘블루라이트 요코하마’의 가사에서 제목을 딴 ‘걸어도 걸어도’는 ‘2009 아시안필름어워드’ 감독상을 받았고 일본 내 6개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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