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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아예 망하는 데까지 가겠다는 건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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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한나라당이 쇄신 논란으로 시끄럽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이름이 연일 오르내린다. '이재오의 입' 진수희 여의도연구소장이 입을 열었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이재오가 온다’. 한나라당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한나라당 쇄신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올 3월 귀국한 뒤 정계와 거리를 두고 있는 그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한 건 지난달 원내대표 경선 때부터다. 친이계의 결집으로 안상수 의원이 당선되고 이달 1일 당 사무총장에 장광근 의원,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에 진수희(54·사진) 의원이 임명되자 “이재오계가 당을 장악했다”고들 수런댔다. 2일 정두언·임해규·차명진·김용태 의원 등이 당 지도부 사퇴와 조기 전당대회를 주장하는 ‘7인 성명’을 내자 배후로 거론되기도 했다.

4일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는 ‘지도부 사퇴와 조기 전당대회 주장은 이재오 복귀의 수순’이란 의혹과 반박으로 시끄러웠다. ‘이재오 불출마’를 전제로 한 조기 전당대회 주장까지 나왔다. 연찬회장에는 원외인 이 전 최고위원도, ‘이재오의 입’인 진수희 의원도 없었다. 진 의원은 맏딸 김유진(28)씨의 하버드대 대학원(조경설계 석사)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1일 미국으로 출국한 뒤였다.

진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이 전 최고위원의 최측근이다. 이 전 최고위원이 원내대표 시절 기자들에게 “나와 연락이 안 되면 진수희 원내대변인의 말이 내 얘긴 줄 알라”고 말한 이래 ‘이재오의 입’으로 불리고 있다. 지금도 이 전 최고위원과 매일 전화하고 일주일에 두어 번은 꼭 만나는 사이다. 5일 미국에 있는 진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한 시간을 넘겼다.

‘이재오 불출마론’ 예의가 아니다
-진 소장을 비롯해 이재오계가 당직을 다 차지했다는 비판이 있다.
“나로서는 좀 섭섭하다. 내가 여의도연구소에 (선임연구위원으로) 10년 있었다. 한나라당 의원 170명 중 나만큼 연구소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사람이 없을 거다. 지난해에도 소장 후보로 거론됐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이재오계라고 하면 아마 화내실 거다. 두 분이 친한 동료 사이인데 누가 누구 계파라는 게…. 장광근 의원도 사무총장 맡고 나니 갑자기 이재오계란다.”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조기 전당대회 등 쇄신안을 놓고 대립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봤다. 한나라당의 자기 반성과 개혁 문제를 정파적으로 다루는 걸 보고 너무 실망스럽고 자괴감도 느꼈다. 이재오·박근혜가 나오고 안 나오는 게 뭐가 중요한가. 누가 당권을 잡을까 봐 안 된다는 건 정말 어불성설이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격이다. 우리 당의 쇄신과 개혁은 절체절명이자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다. 쇄신이 싫다고 안 하면 한나라당이 아예 망하는 데까지 가는 걸 보겠다는 건
가.”

-임해규 의원이 ‘이재오 출마는 내가 나서서 막겠다’며 진정성을 호소했다.
“그 말 자체가 전직 의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목소리를 높이며) 뒤에서 가만히 자기 일만 하고 있는 사람을 끌어내 출마하면 된다 안 된다, 하면 막겠다 말겠다…. 이건 예의가 아니죠.”

-조기 전대를 하면 이 전 최고위원이 나오나.
“그건 조기 전당대회가 정해진 뒤에 고민할 일이다. 지난달 정몽준 최고위원이 ‘박 전 대표와 이 전 최고위원 등 실세들이 전당대회에 나와야 한다’고 했을 때 ‘나는 실세라고 생각 안 하기 때문에 나갈 이유가 없지’ 하고 농담처럼 말씀하신 적은 있다.”

-정계 복귀는 10월 재·보선 때 하는 건가.
“(문국현 대표) 2심 선고도 안 내려졌는데 그런 말을 할 상황인가. 출마한다고 마음 잔뜩 먹고 있다가 선거가 없으면 어떡할 건가. 현재 은평을 원외 당협위원장으로서 예전처럼 지역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

-현 지도부가 사퇴해야 한다고 보나.
“당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말할 입장이 아니다. 원론만 말하자면 당은 원래 민심을 헤아리고 끊임없이 쇄신과 개혁을 해야 한다. 하물며 4·29 재·보선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간다는 것은 집권당으로서 무책임한 것이다. 민심을 먹고사는 정당으로서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7인 성명’이 나왔는데.
“(한숨을 쉬며) 진짜 그 사람들만큼 대통령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는데…. 하지만 방식이 참 잘못됐다. 결과적으로 이 전 최고위원에게도 엄청나게 상처를 입혔다. (이 전 최고위원이) 7인의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이 나오지 않았나. 멀쩡히 조용히 있는 사람이 공연히 끌려 나와서…. 굉장히 죄송하게 생각해야 한다. 충정만 앞서 대통령과 이 전 최고위원에게 미칠 파장은 생각 못하고….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어떻게든 말렸을 거다.”

-방식이 잘못됐다?
“(격한 목소리로) 청와대와 대통령을 겨냥해서…. (한동안 호흡을 고른 뒤) 국민들 보기에 우스워졌다. 나도 그 사람들 충정은 120% 이해한다. 의원직도 미련 없이 던질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하지만 방식이 아직 한국적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힘들고…. 당장 노 전 대통령 때 386들과 다를 게 뭐 있느냐는 소리가 나오지 않느냐. 차라리 대통령을 찾아가 직접 말씀드리든가. 대통령 직계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대통령도 사람인데…. 지금은 대통령께서 스스로 결심하실 수 있게 시간을 드리는 게 예의다. 그런데 그 새를 못참아서….”

-이 전 최고위원은 뭐라고 하던가.
“그냥…, ‘젊은 친구들 충정은 알겠는데 왜 일을 그런 식으로 했을까’라고 하시더라.”

대통령 스스로 결심할 시간 줘야
-청와대는 쇄신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당 쇄신을 철저하게, 정말 결기를 가지고 하면 그 동력에 의해 정부와 청와대도 바뀐다고 본다. 대통령·청와대와 관계없이 당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심판받는 건 당이다. 우선 당이 정말 뼈를 깎는 반성과 쇄신을 하면 정부와 청와대도 자연히 그 흐름에 따라온다고 확신한다.”

-쇄신특위 활동이 충분했다고 보나.
“아니지, 전혀 아니지. 당 쇄신에 집중적으로 쏟아부어야 할 힘과 논의가 분산돼 버렸다. 계파 안배를 하다 보니 쇄신특위가 한나라당 축소판처럼 됐는데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겠나.”

-당이 어떻게 쇄신해야 한다고 보나.
“공천 시스템을 바꾸는 게 최우선 과제다. 지금 한나라당은 서로 노선이 달라서가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감정이 이입돼 갈라져 있지 않나. 거슬러 올라가면 공천 시스템 때문이다. 야당에서 여당이 됐으니 지도체제도 바뀌어야 한다. 최고위원 체제보다는 강력한 당 대표 체제가 적합하다. 대표가 청와대 교시만 받아올 게 아니라 경우에 따라 당당히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원내 정당화도 중요하다. 중앙당의 존재는 선거 때만 부각돼야지 의원을 거수기로 만들면 안 된다. 상임위 중심으로 의원들 의견이 더 많이 반영돼야 한다.”

-여의도연구소는 어떻게 꾸릴 건가.
“야당일 때와는 달라야 한다. 정부 부처도 있고 국책연구소와 당 정책위도 있으니 정책 개발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만들어진 정책에 대해 민심을 기준으로 정무적 판단에 힘을 쏟아야 한다. 집권당의 싱크탱크로서 대통령이 성공하고 당이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사전 모니터링에 힘쓰겠다.”

구희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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