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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산하 우리풍물]16.전남 담양 죽세공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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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고 사시 (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

- 고산 (孤山) 윤선도 (尹善道) 의 오우가 (五友歌) 중에서

대나무는 유형 무형으로 생활에 도움을 준 우리의 오랜 친구다. 선비들은 대나무의 '항상 푸르고 (常靑) 곧으며 (直) 겸허 (空)' 점을 본받아 수양의 지표로 삼았다. 서민들은 대나무로 죽부인.삿갓.키.고리등을 만들어 내는 지혜를 발휘했다.

그뿐인가. 죽순요리.죽엽청주등 식도락가들의 입맛을 돋우는 고급요리의 재료로 인기를 끌었다.

'대나무골' 또는 '죽향 (竹鄕)' 으로 불리는 전남담양군. 담양에서는 지금도 손을 바삐 놀리며 죽세공예품을 만드는 천여명의 장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담양의 죽세공예품을 자세히 알려면 군 전체를 돌아다녀야 한당께. 각 마을마다 전공이 있다말이시. " 키와 삿갓을 만드는 장사채 (60) 씨는 "마을마다 한두가지씩 독특한 죽세공예기술이 전해오고 있다" 고 말했다. 장씨의 말대로라면 3백여 마을로 이루어진 담양에는 그만큼 다양한 죽세공예기술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담양에서 죽세공예품을 만드는 집은 2백49가구. 1천4백여명의 장인들이 쉴새없이 손을 놀리며 70여종의 죽세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이중 신기함과 화려함으로 나그네의 눈길을 끄는 죽세공예품은 낙죽.채상이다.

낙죽은 숯불에 달군 인두로 대나무 표피에다 십장생도.국화.매화등 각종 그림을 새긴 죽세공예품. 놀라운 것은 인두의 온도에 따라 검정색.다갈색.밤색등 다양한 색깔이 나타난다. 열이 높으면 검정색, 낮으면 다갈색으로 나타난다. 낙죽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붓통이다.

채상은 대나무를 얇고 가늘게 쪼개 빨강.노랑.파랑색으로 염색한 후 짜서 만든 상자다.

채상을 짜는 방법은 대나무상자인 '고리' 와 비슷하지만 현란한 색깔과 화려한 문양을 위한 염색및 마무리 작업이 까다롭기 때문에 훨씬 복잡하다. 두사람이 대.중.소 3개의 채상을 만드는데 보름을 넘기기가 일쑤다.

삿갓.소쿠리.참빗.바구니등도 일일이 사람손을 타는 물건이다. 죽세공예를 하는데 최소 인원은 두명. 한사람은 대나무살을 얇게 쪼개거나 재료를 챙기고 다른 한사람은 재료를 제품으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기술을 가르칠래도 배울 사람이 없어. 40년 넘게 같이 산 마누라도 못하는 것이 죽물이여. " 채상을 만드는 서한규 (69) 씨는 기술 전수가 어렵다고 한탄한다. 이렇게 죽물은 만들기도 어렵고 수요도 예전만 못하다. 그런 까닭에 담양의 죽세공예품분야도 요즘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죽세공예품의 경우 이미 현대적인 기호를 반영한 죽물이 전통 죽물을 앞서고 있다. 과거 사람들이 자주 만들었던 죽세공예품은 삿갓.소쿠리.키.참빗.바구니. 그러나 지금은 대자리.방석.전화받침대.자동차시트.장롱등 현대인의 기호를 반영한 제품이 더 많다.

유통분야에도 5일장 (2, 7일) 으로 열리는 죽물시장대신 상설 죽세공예단지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담양천 고수부지에서 열리는 죽물시장은 요즘은 담양사람에게도 생소한 장소가 되고 말았다.

담양군죽세공예단지 조재휘 소장은 "죽향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신제품의 출현과 새 유통시스템의 도입이 불가피하다" 고 말한다. 전통과 현대의 갈림길에 선 담양.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담양에는 변함없는 '대나무 인간' 들이 남아 있다.

대나무살의 한끝을 입에 물고 대나무살을 반으로 가르는 힘든 작업을 고집하는 장인들. 그들이 존재하는 한 대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정직.지조.겸허같은 메시지들도 살아 있을 것이다.

담양 = 송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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