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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아예 망하는 데까지 가겠다는 건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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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호 10면

‘이재오가 온다’. 한나라당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한나라당 쇄신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올 3월 귀국한 뒤 정계와 거리를 두고 있는 그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한 건 지난달 원내대표 경선 때부터다. 친이계의 결집으로 안상수 의원이 당선되고 이달 1일 당 사무총장에 장광근 의원,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에 진수희(54·사진) 의원이 임명되자 “이재오계가 당을 장악했다”고들 수런댔다. 2일 정두언·임해규·차명진·김용태 의원 등이 당 지도부 사퇴와 조기 전당대회를 주장하는 ‘7인 성명’을 내자 배후로 거론되기도 했다.

‘이재오의 입’ 진수희 여의도연구소장

4일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는 ‘지도부 사퇴와 조기 전당대회 주장은 이재오 복귀의 수순’이란 의혹과 반박으로 시끄러웠다. ‘이재오 불출마’를 전제로 한 조기 전당대회 주장까지 나왔다. 연찬회장에는 원외인 이 전 최고위원도, ‘이재오의 입’인 진수희 의원도 없었다. 진 의원은 맏딸 김유진(28)씨의 하버드대 대학원(조경설계 석사)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1일 미국으로 출국한 뒤였다.

진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이 전 최고위원의 최측근이다. 이 전 최고위원이 원내대표 시절 기자들에게 “나와 연락이 안 되면 진수희 원내대변인의 말이 내 얘긴 줄 알라”고 말한 이래 ‘이재오의 입’으로 불리고 있다. 지금도 이 전 최고위원과 매일 전화하고 일주일에 두어 번은 꼭 만나는 사이다. 5일 미국에 있는 진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한 시간을 넘겼다.

‘이재오 불출마론’ 예의가 아니다
-진 소장을 비롯해 이재오계가 당직을 다 차지했다는 비판이 있다.
“나로서는 좀 섭섭하다. 내가 여의도연구소에 (선임연구위원으로) 10년 있었다. 한나라당 의원 170명 중 나만큼 연구소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사람이 없을 거다. 지난해에도 소장 후보로 거론됐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이재오계라고 하면 아마 화내실 거다. 두 분이 친한 동료 사이인데 누가 누구 계파라는 게…. 장광근 의원도 사무총장 맡고 나니 갑자기 이재오계란다.”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조기 전당대회 등 쇄신안을 놓고 대립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봤다. 한나라당의 자기 반성과 개혁 문제를 정파적으로 다루는 걸 보고 너무 실망스럽고 자괴감도 느꼈다. 이재오·박근혜가 나오고 안 나오는 게 뭐가 중요한가. 누가 당권을 잡을까 봐 안 된다는 건 정말 어불성설이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격이다. 우리 당의 쇄신과 개혁은 절체절명이자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다. 쇄신이 싫다고 안 하면 한나라당이 아예 망하는 데까지 가는 걸 보겠다는 건
가.”

-임해규 의원이 ‘이재오 출마는 내가 나서서 막겠다’며 진정성을 호소했다.
“그 말 자체가 전직 의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목소리를 높이며) 뒤에서 가만히 자기 일만 하고 있는 사람을 끌어내 출마하면 된다 안 된다, 하면 막겠다 말겠다…. 이건 예의가 아니죠.”

-조기 전대를 하면 이 전 최고위원이 나오나.
“그건 조기 전당대회가 정해진 뒤에 고민할 일이다. 지난달 정몽준 최고위원이 ‘박 전 대표와 이 전 최고위원 등 실세들이 전당대회에 나와야 한다’고 했을 때 ‘나는 실세라고 생각 안 하기 때문에 나갈 이유가 없지’ 하고 농담처럼 말씀하신 적은 있다.”

-정계 복귀는 10월 재·보선 때 하는 건가.
“(문국현 대표) 2심 선고도 안 내려졌는데 그런 말을 할 상황인가. 출마한다고 마음 잔뜩 먹고 있다가 선거가 없으면 어떡할 건가. 현재 은평을 원외 당협위원장으로서 예전처럼 지역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

-현 지도부가 사퇴해야 한다고 보나.
“당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말할 입장이 아니다. 원론만 말하자면 당은 원래 민심을 헤아리고 끊임없이 쇄신과 개혁을 해야 한다. 하물며 4·29 재·보선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간다는 것은 집권당으로서 무책임한 것이다. 민심을 먹고사는 정당으로서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7인 성명’이 나왔는데.
“(한숨을 쉬며) 진짜 그 사람들만큼 대통령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는데…. 하지만 방식이 참 잘못됐다. 결과적으로 이 전 최고위원에게도 엄청나게 상처를 입혔다. (이 전 최고위원이) 7인의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이 나오지 않았나. 멀쩡히 조용히 있는 사람이 공연히 끌려 나와서…. 굉장히 죄송하게 생각해야 한다. 충정만 앞서 대통령과 이 전 최고위원에게 미칠 파장은 생각 못하고….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어떻게든 말렸을 거다.”

-방식이 잘못됐다?
“(격한 목소리로) 청와대와 대통령을 겨냥해서…. (한동안 호흡을 고른 뒤) 국민들 보기에 우스워졌다. 나도 그 사람들 충정은 120% 이해한다. 의원직도 미련 없이 던질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하지만 방식이 아직 한국적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힘들고…. 당장 노 전 대통령 때 386들과 다를 게 뭐 있느냐는 소리가 나오지 않느냐. 차라리 대통령을 찾아가 직접 말씀드리든가. 대통령 직계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대통령도 사람인데…. 지금은 대통령께서 스스로 결심하실 수 있게 시간을 드리는 게 예의다. 그런데 그 새를 못참아서….”

-이 전 최고위원은 뭐라고 하던가.
“그냥…, ‘젊은 친구들 충정은 알겠는데 왜 일을 그런 식으로 했을까’라고 하시더라.”

대통령 스스로 결심할 시간 줘야
-청와대는 쇄신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당 쇄신을 철저하게, 정말 결기를 가지고 하면 그 동력에 의해 정부와 청와대도 바뀐다고 본다. 대통령·청와대와 관계없이 당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심판받는 건 당이다. 우선 당이 정말 뼈를 깎는 반성과 쇄신을 하면 정부와 청와대도 자연히 그 흐름에 따라온다고 확신한다.”

-쇄신특위 활동이 충분했다고 보나.
“아니지, 전혀 아니지. 당 쇄신에 집중적으로 쏟아부어야 할 힘과 논의가 분산돼 버렸다. 계파 안배를 하다 보니 쇄신특위가 한나라당 축소판처럼 됐는데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겠나.”

-당이 어떻게 쇄신해야 한다고 보나.
“공천 시스템을 바꾸는 게 최우선 과제다. 지금 한나라당은 서로 노선이 달라서가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감정이 이입돼 갈라져 있지 않나. 거슬러 올라가면 공천 시스템 때문이다. 야당에서 여당이 됐으니 지도체제도 바뀌어야 한다. 최고위원 체제보다는 강력한 당 대표 체제가 적합하다. 대표가 청와대 교시만 받아올 게 아니라 경우에 따라 당당히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원내 정당화도 중요하다. 중앙당의 존재는 선거 때만 부각돼야지 의원을 거수기로 만들면 안 된다. 상임위 중심으로 의원들 의견이 더 많이 반영돼야 한다.”

-여의도연구소는 어떻게 꾸릴 건가.
“야당일 때와는 달라야 한다. 정부 부처도 있고 국책연구소와 당 정책위도 있으니 정책 개발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만들어진 정책에 대해 민심을 기준으로 정무적 판단에 힘을 쏟아야 한다. 집권당의 싱크탱크로서 대통령이 성공하고 당이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사전 모니터링에 힘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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