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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가슴이 따뜻한’ 전쟁광이 필요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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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호 13면

1986년 미국에서 발표된 『엔더의 게임』은 한 아이의 성장통을 다룬 성장소설이면서, 철학적 사유와 인간적 갈등이 녹아 든 구도소설이자, 한편의 장대한 스페이스 오페라이기도 하다.소설은 모든 의사 통로가 왜곡된 상황에 혼자 격리된 소년이 조작된 게임에 맞닥뜨리며 인간성을 유린당하고 역으로 영웅으로 추대되는 상황을 보여 준다.

조현욱 교수의 장르문학 산책- SF『엔더의 게임』

2135년 외계 종족과 전쟁 중인 군부는 엔더라는 6세 소년을 반강제적으로 우주함대 지휘관 양성학교에 편입시킨다. 발군의 공간감각과 천재적인 두뇌, 통솔자로서의 자질에 주목한 것이다. 학교에는 엄격한 훈련과, 높은 강도의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 그리고 동료의 질투와 견제가 기다리고 있다. 엔더는 그곳에서 절대 패배하지 않는 지휘관이 되도록 훈련받는다.

12세가 된 엔더는 끝없는 모의 전쟁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게임이 끝났을 때 자신이 철저히 기만당했음을 알게 된다. 다음은 장군과 엔더의 대화. “너는 지난 수개월간 총사령관으로 우리 함대를 지휘해 왔단다. 게임이 아니라 실전을 한 거야. 이제 그들은 전멸했단다.”

“나는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들은 나를 속여 살인마로 만든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었어. 우리에게는 버거들(외계 종족)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가슴이 따뜻한 인물이 필요했다. 부하들과도 한몸처럼 행동할 수 있는 사려 깊은 지휘관이 필요했어. 그러나 그런 인물은 절대 생명을 죽이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양면이 다 필요했던 거다. 네가 그 모든 사실을 알았다면 그런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게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연민,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 단절에서 오는 비극이다.

버거들은 사실 지구에 대해 악의가 없었으며 평화 공존을 원했다는 것을 엔더는 뒤늦게 알게 된다. 이 전쟁은 소통의 부재로 인한 우주 최대의 학살 사건이었던 것이다. 에필로그에서 엔더는 사라진 버거들의 역사를 대신 기록해 책으로 펴내고 스스로 ‘사자(死者)의 대변인’을 자처하며 우주를 떠돈다.

이 소설은 특히 주인공의 심리 변화, 그리고 그가 조직사회에서 겪는 수많은 난관과 이를 생산적으로 극복하는 단계를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그려 낸 점이 돋보인다. 미국의 여러 교육기관에서 『엔더의 게임』을 심리학과 리더십 강좌의 교재로 사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은 또한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난독증의 치료 교재로도 쓰인다. 그만큼 쉽게 술술 읽히는 데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저자 오슨 카드는 “의미가 분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작품이 되도록 썼다” 고 영문 하드커버판 서문에서 밝힌 바 있다. 과학소설에 소양이 없는 일반 독자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그는 86년 『엔더의 게임』, 87년 그 속편인『사자(死者)의 대변인』으로 2년 연속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받은 유일한 작가가 됐다. 한글판은 92년 가서원, 2000년 시공사에서 나왔다가 절판됐고 지난해 루비박스에서 재간됐다. 한글판의 아쉬운 점은 6세, 8세의 주인공뿐 아니라 또래 인물들의 말투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딱딱하거나 어른스럽다는 점이다.


조현욱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과 문화담당 논설위원을 지냈다. 무협소설과 SF 같은 장르문학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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