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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제3장 함부로 쏜 화살

신문지상에 공개되는 잔혹스런 납치범들의 비정한 소행에 비하면 어딘가 허술하고 해괴한 구석이 있었다. 우선 태호를 납치했다는 두 사람의 구성원이 완력깨나 쓴다는 태호가 감히 대적 못할 포악성을 가진 위인들로 보이지 않았다.

왜소하고 가냘픈 체구에 거의 완전한 대머리인 한 사람은 이미 한물 간 오십대 후반으로서, 젊은 남자를 납치하기엔 근력이 미치지 못하는 위인이었다. 이십대 초반으로 짐작되는 젊은이도 마찬가지였다.

몸집이 차돌처럼 똘똘 뭉쳐진 시정의 폭력배로 보이기는커녕 주는 대로 받아먹고 허우대만 열없게 웃자란 마마보이라는 걸 당장 눈치챌 수 있었다.게다가 슬쩍 내려친 쇠파이프에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는 엄살은 오히려 봉환의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태호가 꼼짝없이 납치당하고 말았던 것일까. 그제서야 봉환의 뇌리에 전광석화처럼 집혀오는 것이 있었다. 그는 다시 쇠파이프를 치켜들며 납치범들을 향해 바지는 물론 속옷까지 몽땅 벗으라고 명령했다.

제발 죽이지만 말아 달라는 그들은 시키는 대로 사추리가 완벽하게 드러나도록 옷을 벗었다. 그런데도 봉환의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벗어준 옷을 샅샅이 검색했는데도 태호에게 위협이 되었을 만한 무기 따위는 면도날 하나 찾아낼 수 없었다. 상황을 조합해보면, 오히려 태호가 그들을 납치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잔뜩 긴장되어 있었던 봉환은 그 순간, 맥이 빠지고 말았다. 결국은 그때까지 덩달아 무릎을 꿇고 있는 태호를 일으켜 세우며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태호 니는 왜 이카고 있노? 나는 니보고 엎드리라 안그랬데이. 내가 설치는 바람에 니 혼백이 나가뿌렀나? 발딱 일어서서 니 꼴이 이렇게 된 내막이나 속시원하게 말해보거라. " 그러나 태호는 얼굴만 하얗게 질린 채로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몇 번인가 채근을 하였지만, 침묵으로 일관하였으므로 봉환은 또 다시 그들을 위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늙은이의 입에서 의구심만 가중되는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태호는 엄연히 내 호적에 올라 있는 내 식구예요. 선생이 간섭할 일이 아닙니다. " "선생이고 좆이고 손은 왜 내려 이 새끼야. 한 식구든 두 식구든 그거는 조선시대 일이고, 지금은 내하고 한 식구다.

알토란 같은 남의 식구를 한마디 통기도 없이 협박해서 끌고가면, 납치범이 된다는 걸 모리나 이 새끼야? 손 들고 있어. " 봉환은 마지못해 끌려오는 태호와 문 밖으로 나섰다. 문을 나서면서 허둥지둥 옷을 주워 입고 있는 그들에게 쇠파이프를 한 번 더 휘둘러서 위협을 주었다.

그러나 까무라친 줄 알았던 판매대의 여자가 어느새 뒤따라 나서며 또 다시 외마디 소리를 질러댔다.파손시킨 기물을 변상하고 떠나라는 것이었다.

봉환은 순순히 주머니를 뒤져 여자가 요구하는 대로 박살낸 가구값을 치렀다. 그리고 여자에게 말했다.

아줌마 보기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우리가 난동이나 부리고 다니는 부랑배는 아이시데이. 문 밖에는 식당주인이 시치미를 뚝 떼고 서 있었다.

봉환이가 가게로 들어서기 전에, 그들이 몰고온 승용차 타이어의 공기를 빼버리라고 일러주었었다.봉환이가 턱짓으로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납치범들은 몇 시간 동안은 곱다시 휴게소 가게에 갇혀 있게 될 것이었다. 다시 차를 몰아 장릉의 숙소에 당도한 것이 밤이 이슥해질 무렵이었다.

남아 있던 두 사람은 물론 줄담배를 피우며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귀엣말하는 버릇이 없는 봉환은 태호가 듣고 있는 면전에서, 돌아오는 차중에서 몇 번인가 물어봤지만, 태호의 대꾸는 들을 수 없었다고 볼멘소리를 하였다.

방안의 분위기가 어색하게 굳어가는 중에 방구석에 소슬하게 앉아 있던 태호가 느닷없이 울음소리를 터뜨리고 말았다. 봉환이가 와락 만류하려 들자, 변씨가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제지했다.

"울게 둬. 울고나면, 오늘 사건을 해명할 기운을 차릴게야. "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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