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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영빈 칼럼

비주류의 주류화 시대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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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마이클 파렌티라는 미국의 진보주의 사상가가 쓴 책 중에 '비주류 역사(원제 History As Mystery)'가 있다. 그는 주류의 역사란 역사적 진실이 아닌 권력자의 검열을 통한 특정해석이라고 본다. 지배계급의 역사를 벗어나 비주류 역사를 쓰기 위해선 농민 폭동, 노동자들의 투쟁, 진보적 정치가에 대한 탄압, 사기업의 약탈과 횡령, 미국의 제국주의, 원주민에 대한 강간과 약탈.학살.파괴 등 주류 역사에서 숨겨진 역사를 파헤쳐야 한다고 역설한다. 참된 역사는 주류 이데올로기를 건설적으로 파괴하여 새로운 역사해석을 시도하고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행위라고 규정한다. 그의 또 다른 저술인 '카이사르의 죽음'에선 민중의 편을 드는 비주류 개혁가 카이사르가 어떻게 암살되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로마의 기득권 주류세력이던 키케로 같은 원로원 귀족세력들이 카이사르의 토지 재분배 등 재산권 침해 정책에 반발하면서 집단 암살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 카이사르도 유방도 포용정책 써

모든 역사가 주류의 역사라고 단정해선 안 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성공의 역사와 실패의 역사, 주류의 역사와 비주류의 역사를 동시에 담고 있다. 지배자 중심의 왕조실록 편찬에서도 선대 정치의 잘잘못을 따지다 멸문의 화를 당한 사관들도 있다. 그러나 역사 전개를 비주류의 주류화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는 있다. 중국 최대의 제국을 이룩한 한(漢) 고조 유방(劉邦)은 나쁘게 보면 건달이었고 좋게 보면 협객이었다. 주류의 정치가 혼란스럽고 도덕성을 상실한 채 민생이 도탄에 빠질 때 뜻을 같이하는 협객단체들이 뭉치게 된다. 이들이 한 고조를, 명나라 주원장을 국가 지도자로 탄생시키는 추동력이 되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리드하는 지도세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우리 사회도 비주류의 주류화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고 나는 본다.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청와대 참모진 다수가 지난 군사독재 세력에 항거하고 민주화 쟁취를 위해 앞장섰던 인물들이다. 노무현 정부 집권 1기엔 청와대 참모 중 386운동권 출신이 37%를 차지한다는 분석이 나온 적이 있고 총선을 거치면서 1980년대 운동권 출신 55명이 대거 국회로 진출했다. 총리를 비롯한 실세들이 같은 시절 앞서거니 뒤서거니 감옥을 드나들었다. 과거 잣대로는 범법자들이었지만 지금 와선 민주화 투쟁을 위해 온몸으로 헌신했던 한 시대의 협객들이다. 이들이 이제 정권을 창출했고 권력의 핵심에 포진하고 있다. 비주류의 주류화가 여기에 이른 것이다.

역사란 과거의 현재화다. 비주류의 주류화 과정에서 필수적인 게 관용과 포용이다. 일단 비주류가 주류화 과정에 들어선 마당에 더 이상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선 안 된다. 카이사르도 포용정책을 썼고 유방도 화해와 포용을 보여줬다. 적과 동지를 가르지 않았다. 오히려 내부갈등을 일으키는 창업 동지를 멀리하고 배척했다.

비주류의 강점은 구주류의 무능과 부도덕성을 압도하는 신선함과 강한 추동력, 바이털리티에 있다. 성공한 비주류 창업주는 강력한 성장 엔진으로 국민을 사로잡았다. 카이사르는 멀리 이집트까지 로마를 확대했고 티베르강을 개발해 많은 토지를 분배했다. 한의 유방 또한 강한 흡인력으로 천하의 인재를 끌어모아 법치 제국을 이룩했다. 부국강병, 요즘 말로 안보를 튼튼히 하고 경제 살리기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적 성과를 거뒀다.

*** 강력한 성장엔진 보이지 않아

지금 우리 시대 비주류의 주류화 전략은 어떠한가. 통합보다는 분열과 갈등 조장 쪽이라고 본다. 분열과 갈등을 통해 비주류의 주류화를 강화하겠다는 전략도 있겠지만 이는 스스로가 신주류임을 망각한 비주류적 발상이다. 수도 이전 문제로 정권 실세들이 모두 나서 이전 반대면 대통령 불신임이고 정권퇴진 운동이며, 나를 반대하는 언론은 구주류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자세는 전형적인 분열 조장적 비주류 접근방식이다.

과감한 정치개혁과 검찰 독립 등을 통해 구주류와 다른 신선미를 발휘한 것은 신주류 특유의 공적이라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강한 성장 엔진,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집권 1년반이 지났다. 가시적 성과는 차치하고 청사진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주류는 주류다워야 한다. 반대와 저항에만 익숙했던 비주류가 주류가 된 이상 국가 발전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국력 낭비적인 수도 이전으로, 과거 회귀적인 친일파 진상규명으로 국민을 갈등.분열시키는 것은 비주류의 비주류화 방식이다. 신주류다운 관용과 바이털리티를 보여라.

권영빈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