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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앨라배마에 외국기업 몰리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외국기업 유치는 대통령 한 사람이 독려하거나 몇몇 정부 부처가 '원스톱 서비스' 를 한다고 금세 될 일이 아니다. 기업의 해외투자는 세금.고용 등 제도상의 문제만 아니라 교육.여가 등 '삶의 질' 을 구성하는 모든 면을 감안하기 때문이다.

'배타적이고 뒤처진 남부' 의 평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70년대부터 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온 미국 앨라배마 주 (州) 의 사례는 우리에게 참고가 될 것같다.원스톱 서비스 정도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외국기업을 도와주면서 '올 코트 프레싱' 을 펼쳤던 앨라바마주의 외국기업 유치 실태를 살펴본다.

암호명 로즈우드 (Rosewood) .지난 93년 1월. 독일 다임러 벤츠사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새로운 M형 자동차 생산기지를 물색한다고 발표하고 그해 4월 북미 대륙으로 후보지를 압축하자 미 남부 앨라배마주는 '유치 작전' 에 전력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경쟁 상대는 미국 내의 30개 주, 1백50개 지역. 조지아.테네시.네브래스카.미시시피 등 미 남부 6개 주가 막판까지 남아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그해 9월 앨라배마 투스칼루사 지역이 최종 선정됐다.

이렇게 1백50대1의 경쟁을 뚫고 약 반년만에 종결된 로즈우드 작전의 전리품 목록은 꽤 길다. 자본금 3억달러가 투자된 벤츠 공장에만 1천4백명이 새로 취업했다.

완성차 부품중 3분의2가 북미산이고 주요 부품 공급업체로 65개 기업이 새로 선정돼 앨라배마 소재 9개 기업들이 연 3억달러어치를 납품한다, 현재 연산 6만5천대 규모인 이 공장은 내년까지 연산 8만대로 확장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전리품이 있다. 바로 3.8% (3월말 현재) 로 사상 유례 없이 낮은 실업률이다. 벤츠만이 아니라 보잉 등 많은 기업들을 꾸준히 유치한 덕택이다.

"독일의 실업률은 현재 12%에 가깝고 실업자는 4백만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벤츠 M형 자동차는 미국에서 생산돼 거꾸로 유럽에 수출되고 있다. 독일에 명백히 손해인 이런 일을 왜 방치하고 있는가."

취재에 동행했던 한 독일 기자는 이런 질문에 "4백만명의 실업자가 5백만명이 돼야만 독일은 바뀔 것" 이라며 다음과 같이 답했다. "독일의 임금수준은 이곳보다 4배나 높고 땅값은 6배나 비싸다. 노조의 영향력이 강해 근로시간.고용조건 등이 기득권 보호에 치우치고 있다. 공장이 들어선다고 하면 지역사회가 이를 환영하기는 커녕 반대한다. 벤츠 M형 자동차 공장은 세계에 1곳만 지어야 경제성이 있는데 왜 굳이 독일에 짓겠는가. 이런 곳을 놔두고…. "

이제 앨라배마에 사는 사람들의 말을 옮겨보자.

▶앨라배마 경제개발 파트너십 (EDPA) 의 스티브 스월 대외담당 매니저 = 지난해 보잉의 로켓 보조추진 장치 공장을 디카투어 지역에 유치할 때의 암호명은 '닻' (Anchor) 이었다.

지금도 몇 개 프로젝트가 진행중이고 다 암호명이 붙어있다.암호를 붙이는 이유는 성사될 때까지 많은 것을 비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지만 상대 기업들이 더 비밀을 원한다.(EDPA는 앨라배마주 67개 기업이 91년 만든 비영리단체)

▶주지사 직속의 앨라배마개발국 (AOD) 의 빌리 조 캠프 전 국장 = 내가 당시 로즈우드의 총책임자로 임명됐지만 그 일은 '관 (官) 주도' 로 될 성격이 아니었다. 대학.주 의회.지역자치단체.주민.기업 등 모두가 저마다 기업 유치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 제시했다.

▶아이러 실버만 현 AOD 국장 = 아직도 앨라배마 하면 '낡고 배타적이며 느리고 뒤처진 남부' 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과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남부의 친절.환대' 를 얘기하고 거기엔 조금도 거짓이 없다.

▶앨라배마 주립대학 헌츠빌 캠퍼스의 프랭크 프랜츠 총장 = 지난 70년대부터 정부.기업.대학은 지역 경제개발의 3개 축 (軸) 이 돼왔다. 연구개발과 고급인력의 뒷받침 없이 기업투자 유치를 생각할 수 없지 않은가.

정부는 학생들에게 연간 3천3백만달러의 장학금을 지원한다. 우리는 학생들이 대학 1년을 다닌 뒤 한두 학기동안 기업에서 일하고 다시 학업을 마치는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JVC 디스크 아메리카의 헨리 하야미쓰 (速水英明) 사장 = 매주 월요일이면 대학.지자체 관계자들과 마주 앉아 기업과 지역사회가 서로 무엇을 협조할지를 논의한다. 처음 이곳에 공장을 세울 때도 인력훈련의 상당 부분을 지역 단과대학에서 맡았다.

자체 인력훈련 비용은 주 정부에서 1백% 환급해줬다. 71년부터 시행된 '앨라배마 산업개발 훈련 프로그램' 에 따른 혜택이었고 벤츠.보잉도 같은 혜택을 봤다.

(이 회사는 86년 투스칼루사에 입지를 정한 일본계 현지기업이다) ^벤츠 US의 린다 폴미노 대외담당국장 = 벤츠가 이곳에 공장을 짓기로 최종 결정하던 날을 우리는 '개척의 날' 이라고 불렀다.

1천4백명을 채용하는데 4만명이 응모했다. 엄선을 거쳐 고용된 사람들은 자부심을 갖고 4~5명씩 팀을 짜 훈련에 들어갔다.

독일에서 온 기술자에게는 훗날 귀국할 때에 대비해 자녀들이 지역대학에서 주말 보충수업을 받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앨라배마의 기업 유치가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벤츠 공장 유치 때 도로.전기.가스등 인프라를 다 제공하고 인력훈련비용을 1백% 대주느라 2억5천만 달러가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오자 맹렬한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주의 장래를 위해 필요한 투자라는 합의가 이뤄졌고 새로 뚫린 벤츠 공장 진입로에 '메르세데스 드라이브'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현재 3천명의 종업원을 고용하면서 연간 8천만달러의 임금을 지급하는 보잉 공장을 유치할 때는 주 의회.정부가 보잉에 불리한 세제 (稅制) 를 고치는 법안을 20일 만에 발의.의결해 시행에 들어갔다.

주도 (州都) 인 몽고메리의 상공회의소 기업개발국장 엘렌 맥네어는 "항공우주.자동차.전자의 3개 분야의 기업 유치에 주력한다는 것이 앨라배마의 계획" 이라고 말했다.

버밍햄.투스칼루사.헌츠빌.몽고메리 = 김수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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