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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서영채씨 책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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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자유 연애.조혼(早婚) 폐지 등을 주장했던 계몽주의자 이광수(1892~1950)와 '만세전''삼대' 등 사실주의의 선구적인 작품들을 발표했던 염상섭(1897~1963). 그리고 근대 문단의 이단아였던 이상(1910~1937).

1920~30년대 문단을 각각 계몽주의.사실주의.모더니즘으로 삼분했던 세 작가를 한데 묶어 논의한 연구서가 나왔다. 문학평론가 서영채(43)씨가 펴낸 '사랑의 문법'(민음사)이 그것이다.

공통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것 같은 세 작가를 한자리에 불러모으기 위해 서씨가 활용한 연결고리는 '사랑'이다.

문학에서 사랑이라는 제재는 빠질 수 없고, 이광수.염상섭.이상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세 작가의 글쓰기를 비교.분석하기 위한 잣대로 최적이었다는 것이다.

서씨는 이광수의 글쓰기가 모든 구속을 거스르는, 열정의 해방에 기초하고 있으면서도 공동체의 안위와 발전을 중심에 놓은 지사적 글쓰기라고 분석했다. 그의 열정은 그러나 '무정''개척자' 등에서 여주인공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파괴적인 데까지 이른다. 서씨는 그 결과 '유정''애욕의 피안' 같은 나중 작품들에서는 윤리적 엄숙주의가 강화된다고 지적했다.

서씨는 염상섭의 글쓰기는 사회의 전체적인 모습을 통찰하고자 했던 장인적 글쓰기로, 이상의 글쓰기는 예술 자체로 향하는 예술가적 글쓰기로 각각 규정했다.

소설 속에 나타난 악당들을 비교한 대목도 흥미롭다. 이광수 소설의 악당은 죄의식이 없고 결정적인 순간에 쉽게 개심하는 반면 염상섭 소설의 악당들은 협잡꾼들이다.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계교와 모략으로 악행을 저지른다. 한편 이상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누구나 조금씩 악당들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선악이 아니라 악행의 정도 차이다.

서씨는 "이광수의 지사적 경향은 사회적 실천을 중시하는 창비 계열로, 염상섭의 장인적 경향은 문학과지성사 계열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의 예술가적 경향은 장정일 이후 유희의식이 고도로 발휘된 일련의 소설들로 이어졌다고. 서씨는 "문학연구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반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신준봉, 사진=신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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