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핵개발에서 드러난 북한의 국가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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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모든 무기 체계는 그것을 보유한 국가의 국가의지 혹은 국가전략을 반영한다. 전략미사일을 보유하는 국가는 원거리에 위치한 잠재적 위협요소를 언제라도 타격할 수 있다는 국가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핵무기는 어떠한 국가의지를 상징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러시아·중국·프랑스·영국 등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하의 5대 핵보유국과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등 그 외곽 핵보유국들의 국가의지는 자명하다. 자국의 군사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가상 적국에 의한 군사적 우위를 절대 허용하지 않고, 절대무기의 위력을 바탕으로 자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외정책을 이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북한도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핵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대미(對美)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핵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는 종래의 해설은 핵무기 체계에 내재된 군사전략의 함의를 전혀 읽어내지 못한 것이다.

한때 대남(對南) 국력 우위에 섰던 북한은 1980년대 후반 이후로 한국과의 국력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후견국이었던 소련과 중국이 90년대 이후 한국과 국교를 수립했다. 국내적으로는 체제의 구심점이 돼왔던 김일성이 사망하고, 자연재해와 식량난으로 체제 위기가 증폭됐다. 북한 정권 자체가 대내외에서 터져 나오는 이런 도전으로부터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처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김정일 체제는 한국과의 확대되는 국력 격차를 일거에 따라잡으면서, 정권의 생존을 보장해 주는 거의 유일한 국가전략으로서 핵 개발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이런 배경하에 북한은 자신들이 보유한 인적자원·과학기술 등을 총동원해 평안도와 함경도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칼을 갈아 왔던 것이다.

북한과의 국력 격차가 심화되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대북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우리 민족끼리’ 의식이 은연중 만연해졌다. 그러나 0.8kt에 이은 20kt급 내외의 북한 핵실험은 그동안 한국이 자그마한 승리감에 도취돼 ‘진정한 위협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식별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앞으로 자신들이 개발한 핵탄두의 소형화를 추진하면서 그 운반 수단으로 탄도미사일을 선택할 것이 확실시된다. 거듭된 단·중거리 미사일의 발사 실험과 향후 예상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는 소련·중국 등과 마찬가지로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운반 수단으로 하는 핵전략을 추구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같은 북한의 핵개발 및 핵전략 구사는 한국전쟁 이래 최대의 안보위기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 군사력 균형을 일거에 균열시키는 소재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동아시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NPT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가입한 한국에 가용 수단은 제한돼 있다. 따라서 한·미 동맹을 통한 대북 핵억지력의 확장이 우선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에 동의하는 유엔 안보리 및 여러 핵 규제 관련 국제기구들과 연대해 북핵 폐기를 위한 국제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북한의 핵 투발 수단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억지력의 확보도 국방개혁의 추가 과제로 포함돼야 한다.

우리와 우리의 자손이 북한에 의한 핵 위협의 노예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그간 북한이 칼을 갈아왔던 그 이상의 결연한 각오와 의지를 갖고 다각적인 국가 생존의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의 자위 능력을 강화하는 대응책이 마련돼야 한다.

박영준 국방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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