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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양수 칼럼

마오쩌둥의 핵, 김정일의 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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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전략·전술의 귀재’라는 마오쩌둥은 1954년 8월 돌연 대만해협에 있던 진먼(金門)·마쭈(馬祖)섬을 무자비하게 폭격했다. ‘대만 해방’을 명분으로 10개월간 수만 발의 폭탄을 퍼부었다. 진먼은 대륙에서 9㎞ 거리에 있는 조그만 섬이다. 제1차 대만해협 위기였다.

한국전쟁 직후라 미·소 사이엔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감이 넘실댔다. 미 항공모함과 순양함·구축함 등 수십 척의 함정이 달려갔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사태가 장기화되자 핵 사용까지 암시했다. “다른 폭탄과 마찬가지로 원자탄도 쓸 수 있는 것 아니냐”(55년 3월 16일 기자회견)고 말한 것이다.

발언의 파장은 컸다. 마오의 전략은 대만을 때려 소련을 움직이는 ‘성동격서’였다. 스탈린 사후 핵 개발을 꿈꾸던 마오는 54년 10월 베이징에 온 흐루쇼프에게 핵 기술 제공을 요청했다. 대답은 싸늘했다. “사회주의 형제국의 핵우산이 있으면 되지 않느냐. 핵무기는 먹을 수도 쓸 수도 없다.” 그러나 아이젠하워의 발언으로 상황은 반전됐다. 소련은 중국과 핵 관련 협정을 맺고 핵 전문가들을 보내줬다. 그 뒤 중·소 분쟁(60년)으로 소련의 지원이 끊겼지만 마오는 총력전 끝에 64년 10월 원폭 실험에 성공했다.

핵과 미사일을 가진 마오는 소련의 패권에 맞섰다. 중·소 국경 분쟁 때는 무력 충돌도 불사했다. 북극 곰과 붉은 용의 싸움으로 세계 정세는 급변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72년)은 ‘소련 포위론’이란 대전략의 하나였다.

그러나 마오의 핵은 독선과 오만과 폭정의 악순환을 불렀다. 인민공사·대약진운동 실패로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마당에 문화혁명이라는 광란의 시대를 연출했다. 중국 지식인들은 “역사를 수십 년 후퇴시킨 사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마오쩌둥이 류사오치·덩샤오핑 같은 개혁파를 계속 중용했다면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요즘 마오쩌둥의 핵을 떠올릴지 모른다. 안팎의 온갖 악재를 단번에 날려 보내기를 기대하면서…. 북한의 두 번째 핵실험을 놓고 대미 협상용이니, 후계체제 확립용이니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한국·일본 못지않게 안보 위협을 느끼는 나라는 중국이다. 한·일이 핵 무장을 하면 중국은 안보 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한다. 만의 하나 북한의 핵 칼날은 북쪽으로 향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미·중 사이에서 틈을 찾을 것이다.

북한은 59년 조소(朝蘇) 원자력협정 체결 이후 핵무기 보유 목표를 포기한 적이 없다는 게 정설이다. 2012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김 위원장은 핵·미사일로 무장된 강성대국(强盛大國)의 야망에 매달릴 것이다.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핵실험 한 번에 3억∼4억 달러를 쓰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는 29일 밤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핵 보유는 현실이자 아시아의 유일 핵 보유국이던 중국의 국가 이익에 엄청난 손실”이라고 단언했다. 핵을 가진 마오쩌둥이 소련을 향해 ‘노(NO)’라고 했듯 이제 김정일은 중국에 노라고 할지 모른다. 중국 정부 관계자들의 대북 비난 발언은 뾰쪽해졌다. 량광례(梁光烈) 국방부장까지 가세했다. 익명의 전문가는 “사석에서 강력한 제재를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하지만 중국이 북한을 때리면 6자회담의 판이 깨지고 대북 지렛대를 잃을 수 있다. 중국은 조만간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대북 특사로 파견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설득과 압박 사이에서 고민 중이다. 중국 지도부는 2006년 10월 제1차 핵실험 당시 유엔 제재안에 동의하는 한편 송유시설 정비를 명분으로 대북 원유 공급량(연 100만t 추정)을 줄였다. 핵실험에 격분한 후진타오 체제의 물밑 압박이었다. 김 위원장으로선 가장 아팠을 조치 중 하나다.

후 주석은 이제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 핵을 가진 김정일 체제를 방관할 것인지, 동북아의 핵무장 도미노를 수용할 것인지를. 마오는 제2차 대만해협 위기(58년) 당시 펑더화이 국방부장 명의로 “미국은 동태평양 국가인데 왜 서태평양에서 날뛰느냐”고 공격한 적이 있다. 그런 중국이 북핵 저지를 미국에만 맡겨 놓은 채 중재자를 자처하는 것은 자기모순이 아닌가.

중국은 세계 경제위기 이후 미국과 함께 ‘G2’라는 닉네임을 얻고 있다. 그만큼 중국에 대한 국제 사회의 기대가 커졌다. 북핵 문제는 중국에 책임을 다하는 강대국이 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핵 보유론을 일과성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취약해진 대중 외교 라인 역시 재정비해야 한다.

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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