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베이징서 남북 차관급회담]북한,왜 베이징 고집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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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남북대화에서는 으레 접촉장소를 둘러싼 줄다리기가 있어 왔다.이번 회담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측은 판문점을 제안했고 북측은 베이징이 편리하다고 고집했다.이같은 신경전은 나름의 배경이 있다.

70년대는 '민족자주' 를 내세운 북한이 한반도내 회담개최를 주장해왔다.특히 남북을 오가는 회담일 경우 '평양 우선' 을 주장했다.

'한반도의 수도는 평양' 이란 발상에서였다.반면에 우리는 제3국을 선호했다.

북측의 정치선전에 대해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72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적십자 2차본회담에서 북측 수석자문위원 윤기복 (尹基福) 이 회담을 김일성 (金日成) 찬양.선전장으로 만들어 버렸던 일도 있었다.

어쨌든 94년 6월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까지는 판문점에서 열렸지만 김일성 사망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특히 대북식량지원이 회담의 주목적이 되자 95년 6월 쌀 회담부터 북한은 베이징을 회담장소로 고집했다.

판문점은 북한군부가 반대하는 데다 베이징에서 할 경우 한국측이 비용을 떠맡으므로 형편이 어려운 북한으로선 당연한 노릇이었다.85년 9월 1차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교환시 우리측 51명이 3박4일간 평양에 체류하자 당시 북한 조평통 관계자는 " (돈이 들어) 이제는 고향방문 사업 도저히 못하겠어" 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번 회담 역시 비용 모두를 우리측이 부담한다.회담장소인 차이나월드호텔 바로 옆 빌딩에는 한국대사관이 입주해 있어 북한으로서는 편치 않을 터인데도 북한측은 적십자 대표접촉에 이어 이번 회담도 이곳에서 진행하자고 제안해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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