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곰삭은 재즈, 무슨 맛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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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스러운 표정을 요구하자 윤희정은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임현동 기자]

가수 김건모.이은미, 탤런트 김미숙, 개그맨 김미화, 마술사 이은결, 영화감독 이장호, 건축가 양진석.서혜림, 홍사덕 전 의원 등 그녀를 거쳐간 명사.연예인 제자만 140명이 넘는다. 우리 사회의 상위 몇 퍼센트 사이에서는 환영받는 뮤지션이지만 정작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재즈계의 거물 윤희정(51). 그녀가 재즈 가수로 데뷔한 지 20여년 만에 첫번째 정규 앨범 'C.E.O.J'를 냈다. 이 땅에 재즈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안고.

C.E.O.J는 'Co-Edutainment Of Jazz'의 약자다. 재즈가 무엇인지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앨범이라는 뜻이다. 윤희정은 1972년 '세노야'로 데뷔한 뒤 가스펠 싱어로 활동하다 92년 재즈에 입문했다. 97년부터 매달 '윤희정& friend'라는 재즈 콘서트를 열었다. 다양한 직업의 유명 인사에게 재즈를 가르쳐 이 무대에 세웠다. 제자 하나가 1000명에게 재즈를 전파하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 결실이 이번 앨범이다.

"너무 쉽게만 가면 재즈에 상처가 나고, 너무 재즈로 가면 대중이 외면하죠."

오랜 무대 경험으로 대중에게 다가갈 만한 절충점을 찾았다. 그 이름답게 C.E.O.J는 살아있는 재즈 입문서라 할 만하다.

음반 앞쪽에는 비교적 잘 알려진 정통 재즈곡을 수록했다. 타이틀곡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는 콜 포터가 작곡한 대표적인 정통 재즈곡. 경쾌한 맘보 리듬과 애절한 사랑 노래가 만나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앨범 뒤로 갈수록 조금씩 더 복잡한 재즈의 요소가 들어간다. 음반을 들으면서 천천히 재즈에 익숙해지도록 설계한 것이다. 민요 가락 느낌이 나는 윤희정 블루스(Y.H.J blues)는 사물 리듬과 라틴악기의 앙상블이 매력적이다. 재즈 특유의 조바꿈이 능수능란하게 펼쳐지는 곡이기도 하다. 마치 태평소처럼 들리는 이정식의 색소폰 연주 실력에는 입이 딱 벌어진다. 물론 흐름을 이끌어가는 윤희정의 걸쭉한 보컬이 가장 훌륭한 악기다.

마지막 곡인 'Afro Blue'는 한국적인 색깔을 기둥으로 삼아 다양한 요소를 조화시킨 대작이다. 아프리카.라틴 리듬과 절묘히 결합된 꽹과리 장단에 랩을 얹었다. "부채춤만이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건 아니에요. 외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재즈에 한국의 색을 넣는 게 우리 문화를 더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길이죠."

그런데 왜 재즈인가. 그녀는 "재즈는 인간의 영혼을 흔드는 최고의 음악"이라고 말했다. "80~90살이 된 재즈 뮤지션도 떨리는 손으로 무대에 오르지만 추하지 않고 멋있어 보이죠. 영원히 살아 움직이는 재즈를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아요."

이경희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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