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국적 추모 열기 민주발전 밑거름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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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거행된다. 그의 충격적인 서거 이후 한국 사회는 추모 열기에 휩싸였다. 봉하마을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만 200만 명에 육박한다. 무더위 속에서도 신분·이념·노소·여야·지역을 떠난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조문 행렬을 메웠다. 노사모 등 일부 그룹이 특정인들의 조문을 거부하는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애도는 전반적으로 질서 있고 평화롭게 진행돼 왔다.

그렇지만 장례가 끝나는 오늘부터 ‘무질서’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추모 열기가 이명박 정권과 특정 사회세력을 규탄하는 과격한 집단행동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검찰 수사에 부적절한 점은 없었는지 살피고 결과에 따라 책임을 묻고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야권의 주장이 합리적인 차원을 넘어 대대적 정치공세로 확대돼 6월 국회가 또다시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것은 곤란하다.

‘시민추모회의’를 비롯한 시민세력도 촛불집회 등 대규모 추모 행사들을 계획하고 있다. 벌써부터 시청 앞 광장의 사용을 막고 있는 당국과 충돌을 빚고 있다. 평화스러운 촛불집회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추모 행사다. 하지만 지난해 촛불 사태처럼 과격한 시민운동 세력이 가세해 과격한 대중집회로 방향이 바뀌면 우리 사회는 다시 ‘불안지대’로 진입하게 된다. 경찰도 장례식 행사장 주변에 대한 과잉 통제로 시민들의 불만을 사는 일은 삼가야 한다. 오늘 하루만큼은 시민의식을 믿어볼 필요가 있다.

애도는 애도로 끝나야 한다. 갈등 때문에 고통 받은 것으로 치자면 노 전 대통령만 한 이가 없을 것이다. 그런 그 자신이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는 유서를 남겼다. 애도를 정치·사회투쟁으로 변질시키면 유서의 의미를 배반하는 것이다. 전직 국가원수의 투신이라는 충격적 사건은 국민장으로 정리하고, 사회는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은 경제위기의 한복판이고, 더구나 북한의 도발 위협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불안한 상황이다. 추모 열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발화(發火)시킬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