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IMF시대의자녀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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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 (IMF) 시대를 맞아 경제는 물론 정치.사회분야 전반에 걸쳐 크게 반성하고 있다.모두 입을 모아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얼마 전까지 그렇게도 인기 좋았던 '자녀교육' 론은 갑자기 신문.잡지.방송에서 자취를 감추거나 대폭 축소됐다.

경제위기에 자녀교육을 논하는 것은 사치요, 걱정할 겨를이 없단 말인가.실은 우리나라가 총체적 위기에 있기 때문에 자녀교육을 생각하는 것은 더 큰 의의가 있다.

사실 지난 4반세기 동안 우리나라의 자녀교육은 거품투성이였다.기본적인 인간성 개발.내면적 가치추구는 도외시되고 지적능력개발에만 치중했다.

화려한 외형, 즉 성적.특기교육.개인지도.영재학원.조기교육, 그리고 이름있는 외국의 교육방법을 맹신하고 추구했다.

마치 유명 외제상표만을 고집하듯 이미 갖고 있는 전통적 자녀교육관은 무시되고 물질주의적, 성취.경쟁지향적, '서구적' 교육관이 판을 쳤다.

한마디로 진정한 의미의 자녀교육은 실종된 시대였다.

이제 IMF시대를 맞아 자녀교육도 깊이 반성해보고 제 모습을 찾아야 한다.최근 뉴스에 의하면 IMF시대에 접어들면서 가출아.학대받는 아이.버림받는 아이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부모들 자신이 IMF의 고통을 잘 이겨내지 못하고 힘들어 자녀를 귀찮게 여기고 학대하거나 버리는 일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IMF시대 자녀교육상의 또 다른 위험성은 전통적인 "나는 못 먹더라도 내 자식만은…" 이란 희생적 부모상의 문자 그대로의 실천이다.

IMF위기에도 불구하고 내 자녀만은 모든 것을 풍족하게 해주고 한파를 차단해주려는 몸에 밴 과잉보호다.

이러한 부모는 자녀교육의 황금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온실에서만 자란 식물은 작은 한파에도 꺾여버린다는 평범한 교훈을 외면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녀를 IMF한파에 노출시키고 고통에 동참시켜야 한다.용돈도 줄이거나 스스로 벌게 하고, 근검절약하는 습관도 기르고, 일류외제 유명상표 대신 실용적이고 실속있는 상품에 만족하는 검소한 삶의 실천을 가르쳐야 한다.

부모와 어른을 어려워하고 최소한의 예의 범절을 익혀야 한다.가난한 친구.장애 동료를 놀리는 대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돕고 더불어 사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외모나 똑똑함.성적보다 인간성과 사람됨됨이, 내면적.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시켜야 한다.

이러다 보면 정신건강에 필수적인 남을 믿고 사랑하는 능력, 참고 기다리는 능력과 자제력, 남의 고통과 어려움을 공감하고 도우려는 능력 등이 자연히 습득될 것이다.

작은 좌절의 경험은 정신적으로 강한 아동으로 만들고 큰 좌절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을 길러준다.

가정내에서 행해야 할 진정한 자녀교육은 지적인 교육이라기보다 양육.훈육.덕육이어야 한다.

충분한 사랑을 통해 자신감과 남에 대한 신뢰, 어진 마음 (仁) 을 길러주고 적절한 훈육을 통해 옳고 그름과 자제력을 기르며 (義) , 올바른 가치관과 예의범절 (禮) 을 가르쳐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 자녀교육을 누가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자녀교육의 주체는 부모와 자녀다.

IMF시대 자녀교육의 성패는 지금의 30, 40대부모에 달렸다.지금의 부모들은 큰 사회적 혼란이나 좌절 없이 과보호적이며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에서 자라난 세대다.

그렇기 때문에 이 IMF위기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위기를 자기 반성과 성장의 기회로 삼아 과대망상적으로 부풀었던 자아를 현실화하고 이기적.물질주의적.쾌락지상주의적 태도를 포기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삶의 기쁨과 고통을 받아들이고, 부부가 서로 참고 도와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이런 부모의 변화와 노력을 바라보면서 우리 자녀들은 감명 깊게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과 태도를 배울 것이다.IMF는 우리에게 진솔한 자녀교육의 정의와 내실화, 그리고 효과적 방법 모색에 큰 깨달음을 주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돼야 한다.

홍강의<서울대의대교수.소아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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