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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이 새로 쓴 역사 66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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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새벽(한국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열린 2009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맨유의 박지성이 바르샤 골문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로마=연합뉴스)

2009년 5월28일 오전 3시45분(한국시간) 이탈리아 로마. '그들만의 축제'였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마침내 아시아인에게 문을 열었다. 주인공은 한국인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었다. 선발출장한 박지성은 후반 21분 교체될 때까지 66분간 활약했다.

하지만 아시아 축구사에 대역사를 쓰던 이 날 박지성은 웃지 못했다. "우승하지 못한다면 개인적인 의미는 필요없다"던 박지성은 경기 후 단 한 마디의 인터뷰도 없이 경기장 뒤로 사라졌다.

맨유는 FC 바르셀로나에 0-2로 져 준우승에 그쳤고,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클럽으로는 처음으로 트레블(시즌 3관왕)을 달성했다.

출전여부에 조마조마했던 경기 시작 전과 선발이 확정된 후 부풀었던 기대감, 그리고 박지성이 뛰었던 66분을 파노라마로 정리했다.

#박지성 선발 확정에 기자실 술렁술렁

박지성의 선발 여부가 궁금해 아버지 박성종씨에게 줄기차게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 음성메시지로 넘어갔다. '혹시 이번에도…'라는 생각에 괜스레 불길해졌다.

경기 시작 2시간 전 양팀 선수들이 경기장에 도착했다. 맨유 선수들은 폴 스미스 정장 차림인 반면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간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1시간 전 기자실 이곳 저곳에서 '와! 어!'하는 탄성이 터졌다. 박지성의 선발 출전이 UEFA 홈페이지에 공시된 것이다. 일본 기자들은 "우리는 인터뷰 권한을 받지 못했다. 경기 후 박지성 인터뷰를 좀 알려달라"고 부탁해왔다.

#로마에서도 화제가 된 1년 전 박지성 스토리

기자석 앞에 놓은 TV가 맨유 로커룸 안을 보여줬다. 가장 먼저 화면이 잡힌 것은 박지성의 등번호 13번이 쓰여있는 유니폼. 장내 아나운서도 유독 박지성의 이름을 부를 때 '지∼성∼팍'이라며 길게 여운을 남겼다.

지난해 결승전 엔트리에서 탈락한 후 다시 일어선 박지성의 이야기는 유럽 언론에서도 단연 화제다.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르는 챔피언스리그 공식 테마곡에 맞춰 선수들이 입장하고 양팀 서포터석에서는 일제히 카드섹션이 펼치며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전날 왼쪽에서만 훈련하던 박지성은 경기 시작과 함께 오른쪽 윙포워드로 뛰었다. 퍼거슨 감독의 트릭이었을까.

#전반 2분만의 첫 슈팅 '아깝다!' 맨유 팬들 '개고기송'으로 격려

전반 2분. 아크 왼쪽에서 호날두가 오른발 무회전 프리킥을 시도했다. 바르셀로나 GK 발데스가 손으로 걷어내자 박지성이 쇄도하며 오른발 슛을 시도했다. 하지만 옛 동료였던 바르셀로나의 수비수 피케의 오른발에 걸려 코너킥으로 이어졌다. 대역사를 완성할 기회가 날아갔다.

2분 후 루니가 반대편의 박지성을 향해 롱패스를 시도했지만 길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볼을 따내려는 박지성의 모습에 맨유 팬들은 그의 응원가 '개고기 송'을 부르며 격려했다. 전반 41분 박지성은 등을 지고 패스를 받았지만 돌파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볼을 뺏겼다.

후반 11분 또 한번 기회를 잡았다. 루니가 올린 오른발 크로스가 바르셀로나 골문 앞에서 원 바운드되며 뒤로 흐르자 박지성은 있는 힘껏 뛰어올라 머리를 내밀었다. 하지만 볼에 미치지 못했다. 골이 절실했던 퍼거슨 감독은 결국 후반 26분 그를 빼고 베르바토프를 투입했다. 그는 박수로 격려해주는 맨유 팬들을 향해 두 손을 올려 박수로 화답한 후 로커룸으로 향했다.

로마=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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