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개편 가시화]여야 치열한 신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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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물밑' 에서 움직이던 정계개편론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박세직 (朴世直.한나라당) 의원의 탈당예고에 이어 " (오는 사람을) 막지는 않겠다" 는 박태준 (朴泰俊) 자민련총재의 대구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권 빅뱅' 을 의식한 여야의 신경전도 치열하다.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은 진행될 정계개편이 당의 와해로 직결될 것을 우려, '문단속' 에 한창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자칫 인위적 개편이 가져올 후유증 때문에 '성급한 행동' 을 자제하면서도 '어차피 올 일' 이라며 압력을 높여가고 있다.

물론 외형상으로는 자민련이 보다 적극적이다. 이런 와중에 27일 한나라당이 먼저 대여 (對與) 공세의 포문을 열었다. 장광근 (張光根) 한나라당부대변인은 朴총재의 대구발언과 관련, "한나라당 의원 빼가기를 통한 야당파괴와 다를 바 없다" "우리 당의 밑바닥을 흔들어 대세를 반전시켜 보겠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고 비난했다.

자민련이 즉각 반격에 나섰다. "한나라당은 소속 의원들의 탈당 움직임을 다수의 횡포로 막으려 하지 말고 헌법기관인 의원들의 정당선택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김창영 부대변인) 고 역공했다. 반면 국민회의는 말을 아끼고 있다.

"국민이 정계개편의 필요를 느끼지 않도록 야당이 협력해야 한다" 는 원론적 입장만을 고수하는 중이다. 이는 개편 시기와 방법을 둘러싼 여권내 미묘한 입장차이로 이해된다. 자민련은 한나라당 면면을 볼 때 서두르는 게 유리하다고 보는 듯하다.

당장의 총리인준 문제도 한 요인이다. 자민련은 문경 - 예천 정당연설회때 박세직의원 입당식을 갖기로 하는 등 보선을 정계개편 촉진 '지렛대' 로 삼기 위한 치밀한 계산을 해놓고 있다.

朴총재가 27일의 문경 - 예천 정당연설회때 청중들에게 무릎을 꿇어 절하면서 "국회의원 한분 한분이 이렇게 소중한 줄 미처 몰랐다" 며 지지를 호소한 것도 관심크기를 짐작케 한다. 이는 자신의 포항 보선 때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반면 국민회의는 내심 자민련의 왕성한 세 (勢) 불리기를 우려하고 견제를 늦추지 않고 있다. "무리한 영입추진이 야당파괴라는 인상을 줄 경우 오히려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될 것" 이란 논리다.

다만 간접적 노력은 부단히 계속하고 있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엄삼탁 (嚴三鐸) 부총재를 대구달성 보선후보로 공천한 것과 이수성 (李壽成) 전 총리를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 임명한 것도 이런 맥락이란 해석이다.

영남권 공략과 자민련 견제라는 두가지 목적을 동시에 겨냥한 포석이라는 것. 국민회의측은 야당의 내부분열을 유도, 한나라당의 핵분열 과정에서 자진합류시키는 쪽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국민신당의 몸집 불리기를 통해 '4당 체제' 를 정립, 힘의 황금분할을 유도하는 게 우선의 목표인 것으로 관측된다.

정계개편을 둘러싼 여야간 신경전과 여권내의 미묘한 입장차이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정계개편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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